지명
- 양구군
- 국토정중앙면
- 동면
- 방산면
- 수입면
- 양구읍
- 해안면
양구군(楊口郡)
양구군은 고구려시대에 요은홀차(要隱忽次)라 하였는데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에 양록군(楊麓郡)으로 고쳤으며 고려때에 양구현(楊溝縣)으로 고쳤다. 선조25년(1592) 새로 부임한 감사가 금강산에 이르는 길목의 첫 고을인 이곳을 지나다가 함춘(含春)땅의 아름드리 수양수림(垂楊樹林)을 보고 이 고을을 양구(楊口)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까지 불려오고 있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양구군은 5개읍면 76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 1. 양구읍
- 2. 국토정중앙면
- 3. 동면
- 4. 방산면
- 5. 해안면
- 6. 수입면(38도선 이북으로 미수복지가 됨)
국토정중앙면(國土正中央面)
1895년(고종32년)에 2개면(하남면, 하동면)이었으나 1914년 3월 지방행정구역의 대폭 개편으로 인하여 하남면과 하동면이 병합되어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공산치하에 강점되었다가 1950년 6월 25일 남침으로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격전지가 되었다. 1954년 4월 1일 수복주민이 정착하게 되면서 군정을 실시하여 오다가 동년 11월 17일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으로 민정을 실시하면서 16개리를 관할하였으나 1971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대통령령 제6425)으로 상, 하수내리가 인제군으로 편입되고 인제군 두무리가 남면으로 편입되면서 16개리가 21개리로 개편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한 대한민국의 영토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인 점을 고려했을 때 섬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동서남북의 4극 지점을 기준으로 중앙경선과 위선의 교차점인 동경 128° 02′2.5″, 북위 38°03′47.4″ 인 지점이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48번지일대이사.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2021년 1월 1일 국토정중앙면으로 면의 이름을 변경하였다.
적리(笛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옛날에 절이 있었으므로 절골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적골 또는 적동(笛洞)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리(笛里)라 하여 남면에 편입되었다.
- 적동(笛洞)【마을】적리
- 양지적골【마을】양지적동, 양지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
- 샛말【마을】적리에 있는 마을로 능허대밑에 있었으나 6.25사변후에 집이 없음
- 외적동(外笛洞)【마을】벌적골이라고도 하며, 양지 적골 바깥쪽 벌판에 있는 마을
- 능허대터(凌虛臺)【터】적골에 능허대가 있던 터
- 고쿨잿들【들】양지 마을앞에 있는 들
- 고정막골【들】양지 적골에 있는 산골짜기
- 골적골【골】적골 뒤에 있는 골짜기
- 곰낭골【골】골적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구락골【골】곰낭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남녘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 논골【골】논이 있는 골짜기
- 문지방골【골】지형이 문지방처럼 생겼다 함
- 벙골【골】전에 부엉이가 많았다 함
- 분톳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 박달골【골】골적골옆에 있는 골짜기로 일명 비둑골이라고도 함
- 산젯골【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길재골【골】박달골 우측에 있는 골짜기
- 서직골【골】수리 봉 밑에 있는 골짜기
- 소턱골【골】전에 소(沼)가 있었다 함
- 수정골【골】문지방골 옆골짜기로 숫돌과 수정이 많다 함
- 발비트골【골】수정골 좌측 골짜기
- 작은 어덩골【골】아랫말에 있는 골짜기(아랫말은 양지적골임)
- 초놋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 큰 어덩골【골】양지적골에 있는 골짜기
- 가는 잿등【산】양지적골에 있는 산
- 산덕잿등【산】양지적골에 있는 산
- 둥지안【산】대암산 중턱에 있으며, 둥지처럼 생겼다 하여 둥지안이라 함
- 소고닛등【산】골적골옆에 있는 산
- 수리 봉【산】전에 독수리가 많이 나타났다 함
- 주산댓등【산】중고개 아래쪽에 있는 산
- 큰 언턱산【산】골적골에 있는 산
- 길재등【산】한전리로 넘어가는 등
- 중고개【고개】골적골에 있는 고개
- 가매바위【바위】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 함
- 깃대바위【바위】소고닛등 넘어에 있는 바위
- 우능바우【바위】소리가 울리는 바위
- 쿨잿-보〔곡현보〕【보】고쿨잿들에 있는 보
- 곡현보(谷峴洑)【보】고쿨잿보를 말함
- 적리교【교량】본마을과 양지마을을 잇는 다리(1992년 준공 76m)
가오작리(佳伍作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가오자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애골, 웃광치(上廣峙), 아래광치(下廣峙)를 병합하여 가오작리라 하였으며 1971년 1월 1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아래광치를 분할 가오작1리, 가오작2리로 관할하였다.
- 가오자기【마을】가오작리
- 비석길【마을】김기필(金基弼)의 비가 서 있는 마을
- 아래광치(下廣峙)【마을】광치령 밑에 있는 마을로 유화동(柳花洞)이라고도 함
- 양지 가오자기〔양지가오작〕【마을】양지쪽에 있는 마을
- 여냇골【마을】가오작리의 으뜸되는 마을로서 연화동이라고도 함
- 연화동(蓮花洞)【마을】→여냇골
- 웃광치(上廣峙)【마을】광치령 북쪽에 있는 마을
- 고사리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큰 골짜기로 고사리가 많았다 함
- 곰의 덕골【골】전에 곰을 잡기위해 덫을 놓았다 함
- 과우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 광치령(廣峙嶺)【고개】가오작리에서 인제 원통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마루가 평탄하고 광할함
- 광치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 너럭골【골】광치령 밑에 있는 골짜기
- 늡박골【골】동호직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동직골【골】여냇골옆에 있는 골짜기
- 다래번득골【골】전에 다래가 많았다 함
- 문지방골【골】바위가 문지방처럼 생긴 골짜기
- 번득골【골】수리봉 밑에 있는 골짜기
- 빈도릿골【골】양지 마을에 있는 산골짜기
- 사냥빈골【골】이골짜기에 짐승이 많았다 함
- 사탯골【골】적리와의 사이에 있는 산골짜기
- 서낭골【골】서낭당이 있는 골짜기
- 송직골【골】비석거리에 있는 산골짜기
- 만귀미【골】물이 구비친다는 골짜기
- 홍가득골【골】전에 홍씨가 살았다 함
- 작은 가득골【골】홍가득골 아래에 있는 골짜기
- 문박골【골】문안들 골이라고도 함
- 바랑골【골】문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갬수골【골】바랑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전개집골【골】전에 전씨(全氏)의 기와집이 있었다 함
- 절텃골【골】전에 절이 있었다 함
- 제비집골【골】이곳에 구제비(칼새)집이 많았다 함
- 화랙골【골】광치령 뒤에 있는 골짜기
- 수리봉【산】산모양이 독수리처럼 생겼다 함
- 가지봉【산】산모양이 가지처럼 생겼다 함
- 비득재【산】구현(鳩峴) 산모양이 비둘기와 같다 하며 일명 구현산이라고도 함
- 자지봉【산】산모양이 남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 함
- 땡비보【보】땡비벌(땅벌)처럼 일하는 사람이 만든 보
- 맹가보(孟哥洑)【보】맹씨가 만들었다는 보
- 맹세보【보】맹가보 밑에 있는 보
- 버덩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 빈도릿보【보】빈도릿골 아래에 있는 보
- 새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 세밋보【보】서천가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음
- 안구밋보【보】안구미에 있는 보
- 책바위【바위】송직골 앞에 있는 바위로 책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함. 일명 누룩 바위라고도 함
- 먹뱅이【바위】광치령 부근에 있는 바위
- 벼락바위【바위】광치령 부근에 있는 바위
- 죽곡로【길】죽곡리로 넘어가는 도로로서 6.25사변중에 개통된 길
야촌리(野村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멀리 구멍이 뚫어진 용소가 있으므로 멀구리 또는 원화촌(遠花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밤골을 병합하여 들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야촌(野村)이라 하여 남면에 편입되었다.
- 멀구리【마을】→야촌리
- 바깥 멀구리【마을】멀구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
- 안 멀구리【마을】멀구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원화촌(遠花村)【마을】→야촌리
- 몰구지(沒龜池)【소】야촌리 내원평(內原坪)과 외원평(外原坪)이라고도 함
- 오리골【골】골안에 연못이 있어 오리들이 많이 날라와 붙여진 골짜기.(현재도 연못이 있음)
- 먹뱅이골【골】밤골 안에 있는 좌측 첫 골짜기
- 맹골【골】밤골안에 있는 좌측 두 번째 골짜기
- 맡방골【골】밤골안에 있는 좌측 세 번째 골짜기
- 율동(栗洞)【골】밤골, 밤나무가 많았다 함
- 서직골【골】밤골 안에 있는 우측 두 번째 골짜기
- 텃골【골】밤골 안에 있는 우측 첫 번째 골짜기
- 재궁골【골】전에 윤씨(尹氏)의 묘막(墓幕)이 있던 곳이라 함
- 늣박골【골】밤골안에 있는 우측 세 번째 골짜기(만전동이라고도 함)
- 산두네미【골】밤골안에 있는 네 번째 골짜기
- 충창골【골】오리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소장골【골】안몰구지 끝에 있는 골짜기
- 죽골【골】용하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 비행장 들【들】비행장 부근에 있는 들
- 말무덤 고개【고개】죽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소로길 중앙에 말무덤이 있다 함(일명 재궁고개라고도 함)
- 용소【소】밤골입구에 있으며 산밑으로 굴이 멀리 뚫어진 소(일명 우렁소, 우렁골소라고도 함)
- 평풍바우【바위】바위모양이 평풍처럼 생겼다 함
- 용앞보【보】용소 아래에 있는 보
- 용할보【보】서천변에 있는 보
용하리(龍下里)
본래 양구군 하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갯말, 멀구리 일부를 병합하여 야촌리에 있는 용소 아래쪽에 있어 용하리라하여 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71년 1월 1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하1리와 용하2리로 분리되었다.
- 갯말【마을】갯가에 있는 마을(갯모퉁이라고도 함)
- 멀구리【마을】야촌리에 걸쳐있는 마을
- 정지골【골】용하중학교앞 골짜기
- 방앳골【골】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 함
- 빙골【골】심한 낭떠러지가 있는 골짜기
- 잣나무골【골】잣나무가 많은 골짜기
- 재칫골【골】밤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접짓골【골】전에 정자나무가 있던 골짜기
- 죽골【골】양구읍 죽곡리 뒤로 통하는 골짜기
- 갑박골【골】죽골 밑에 있는 골짜기
- 괸들보【보】괴어 놓은 것 같은 돌이 있는 보
- 바깥갯사리보【보】갯말 앞에 있는 보
- 두둘배기【묘】용하초등학교 정문앞에 있는 묘로서 묘앞에 두개의 큰돌을 세워 놓았음(현재 누워있음)
- 소막거리【마을】옛날에 소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남면 사무소 위치라 함
- 개사리 보【보】괸들보 밑에 있는 보
- 설통바위【바위】바위밑에 벌통이 좋으면 벌이 잘 든다하여 설통바우라 함
- 래바우【바위】자라처럼 생긴바위로 청리와 용하리 경계에 있음
- 박골 약수【약수】갑박골 입구에 있는 샘물로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음(산골이 있음)
- ※거북동산(산) : 용하리 마을 복판에 있는 산으로 거북등처럼 생겼으며 용하리, 야촌리, 청리, 송우리를 통털어 지형지세가 배형상으로 생겼으며 배중간에 돗을 꽂는 곳의 형상으로 생겼다 함
청리(晴里)
본래 양구군의 하동면지역으로서 청동(晴洞) 또는 개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삿가지골, 산루네미, 솔숲말, 무쇠점, 원동지골, 장막골을 병합하여 청리라하여 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17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분리 1,2를 3,4로 분리되었다.
- 개멸【마을】청리
- 무쇠점【마을】무쇠점골
- 샛갓골【마을】샛가지골 일명 삿갓골이라고도 함
- 샛 모퉁이【마을】한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 솔숲말【마을】전에 솔숲이 있었던 마을
- 무쇠점골【마을】수철동(水鐵洞) 옛날에 무쇠점이 있었다 함
- 원동지곡(元同知谷)【마을】원동지골-원동지라는 사람이 개척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
- 입동(笠洞)【마을】샛가지 골
- 청동(晴洞)【마을】청리
- 산두네미〔산두평〕【마을】무쇠점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
- 모래둔지【마을】모래가 많다 함. 왕사평 마을
- 가는골【골】골짜기가 가늘게 생김
- 가락골【골】좁고 깊어서 가락처럼 생긴 골짜기
- 늪골【골】봉당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봉당골【골】골짜기가 봉당처럼 넓다 함
- 대추나무골【골】대추나무가 많은 골짜기
- 저고리골【골】골모양이 저고리처럼 생겼다 함
- 보든골【골】저고리골 밑에 있는 골짜기
- 둔둑골【골】둔덕이 저 있는 골짜기
- 뒷골【골】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
- 맹골【골】맹씨가 살았다는 골짜기
- 무밭골【골】무밭이 있었다 함
- 문 바웃골【골】문바우가 있는 골짜기
- 버드나무골【골】봉당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빈장골【골】어름이 삼복더위에도 있다는 골짜기
- 삿가지골【골】골짜기 형이 삿갓처럼 생겼다 함
- 사기점골【골】봉당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산두평【골】산두네미
- 산숫골【골】무덤이 많은 골짜기
- 산제나무골【골】산제를 지내는 나무가 있는 골짜기
- 새뭇골【골】샘물이 나는 골짜기
- 생객골【골】원동지 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쇠덕골【골】전에 쇠점이 있었다 함
- 시재밭골【골】시제를 지내는데 쓴밭이 있다 함
- 신배나뭇골【골】신 배나무가 있었다 함
- 아래 피악골【골】모래둔지에 있는 골짜기
- 안가짐골【골】전에 안씨의 집이 있던 골짜기
- 악뭇골【골】약물이 있는 골짜기
- 움묵골【골】우물이 있다 함
- 음지 저울골【골】산두, 청리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이삿골【골】전에 이씨가 골짜기를 이루었다 함
- 장막골【골】무쇠점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지역골【골】장막골 안에 있는 골짜기(맹골 옆 골짜기)
- 진비장잇골【골】원동지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금산(錦山)【산】청리와 송우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
- 새들【들】새로 개간한 논이 많다 함
- 두무동 고개【고개】원동지골고 모래둥지 사이에 있는 고개
- 새묵골 고개【고개】양구로 가는 고개
- 소도촌령(小桃村嶺)【길】용하리에서 청리를 거쳐 원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 6.25전후에 개통됨
- 갯골령【고개】인제읍 남북리 갯골로 넘어가는 고개
- 굴아우바위【바위】깊은 굴이 있는 바위. 이 바위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석달 열흘만에 야촌리 우렁소로 나온다 하는데, 임진란때 어느 무당이 이 바위굴에서 피란을 하다가 일본인에게 죽어서 그 귀신이 있다 함
- 문바우【바위】문바웃골 안에 있는 바위로 문모양으로 생긴 바위
- 촛대바위【바위】촛대처럼 생긴 바위, 문바위와 같이 있음
- 샘보【보】샘이 나오는 보
- 검은 뱅잇보【보】검은 바위가 있는 보
- 느름나무 보【보】느름나무가 있는 보(군부대가 주둔 없어짐)
- 말등바위【바위】이싯골 서쪽에 있는 바위로 큰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바위
- ※용산둔지 : 옛날에 아이를 낳았는데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있어 장사를 낳았다하여 죽였는데, 무덤에서 용이 나와 울었다하여 용산둔지라 한다고 함
송우리(松隅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소나무가 많은 모퉁이 안쪽에 있으므로 솔로루, 또는 송우(松隅)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정동(陶井洞)을 병합하여 송우리라 하였다.
- 솔로루【리】송우리(또는 솔모루)
- 도정동(陶井洞)【마을】지르물
- 지르물〔도정동〕【마을】솔모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질그릇을 굽던 우물이 있음
- 왓골【골】기와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골짜기
- 왜갈마뭇골【골】왜가리가 집을 짓는 나무가 있었음
- 이장골【골】지르물 뒤에 있는 골짜기
- 바우배기들【들】송우리 들복판에 바위(고인돌)와 묘가 있어 붙여진 들
- 이장골 고개【고개】이장골에 있는 고개
창리(蒼里)
본래 양구군 남면지역으로서, 옛날에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동(蒼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산(馬山)을 병합하여 창리라 하였으며 그 후 1971년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1,2로 분리되었다.
- 창동(蒼洞)【마을】창리
- 마산(馬山)【마을】마을 뒷산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하여 마산 마을이라 함
- 큰골【골】마을뒤에 있는 큰 골짜기
- 고사리 골【골】청리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골짜기
- 다래박골【골】큰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동백골【골】청리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골짜기
- 삼박골【골】뱀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 알가지골【골】큰골 우측 첫 골짜기
- 사신독골【골】큰골과 고사리골 상이에 있는 골짜기(6.25당시 비행기가 떨어진 골짜기)
- 화상골【골】마산 중간 골짜기
- 배나무골【골】큰골 좌축 첫 골짜기
- 뒷들【들】창동 뒤에 있는 들
- 가래나무들【들】전에 이곳에 가래나무가 많았다 함
- 동막산(東幕山)【산】마을동쪽을 막아선 산이라하여 동막산이라 함
- 뱀산【산】산모양이 뱀처럼 생겼다하여 뱀산이라 함
- 횃봉【산】정월대보름 달맞이 횃불놀이를 하였다 함
- 우뭇골【골】마산 뒤에 있는 골짜기
- 실골【골】실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골짜기
- 청리고개【고개】청리로 넘어가는 고개
- 동막고개【고개】동막산에 있는 고개
- 수반들【들】동리 앞에 있는 들
- 쇠쟁이들【들】창동밑에 있는 들(현, 방공국 위치)
- 지밑들【들】창리에 달린 들
- 큰개울【내】창리 앞에 있는 큰하천(서천)
- 큰골개울【내】큰골에서 내려오는 소천
- 샘보【보】샘이 많은 곳에 있는 보
- 지밑보【보】지밑들에 있는 보
- 행길서보【보】황강리로 건너가는 보
황강리(黃岡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봉화대 밑이 되므로 황강이라 하였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황강리라 하였다.
- 봉황대(鳳凰臺)【산】비봉산
- 비봉산(飛鳳山)〔봉황대〕【산】황강리 뒤쪽에 있는 산
- 이득소 안산【산】이득소 뒤에 있는 산
- 빙골【골】마을뒤쪽에 있는 산 골짜기
- 봉제막골【골】마을뒤에 있는 큰 골짜기
- 미역골【골】마을 뒤로해서 송청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 황금 막골【골】마을뒤 좌측 작은 골짜기
- 빙골들【들】황강리 마을앞에 있는 들
- 이득소【소】마을 동쪽, 서천에 있는 소
- 지당 나무【나무】마을뒤 아람드리 소나무가 102그루 있으며 매년 마을에서 산치성(음8월13일) 드리는 곳
- 부엉바위【바위】빙골 우측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부엉이가 서식하고 자주 우는 바위임
도촌리(桃村里)
본래 양구군 남면 지역으로서 돼레지 또는 도리곶(桃里串)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흐리골을 병합하여 도촌리라 하였다.
- 되레지【마을】도촌리
- 도리곶(桃里串)【마을】도촌리 복숭아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
- 흘리곡(屹里谷)【마을】흐리곳, 흘리동 흥치동이라고도 불렀으며, 되레지 남쪽에 있는 마을
- 되레지고개(桃村峴)【고개】되레지에서 원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 작은 되레지 고개(小桃村峴)【고개】되레지고개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고개
- 가는 골【고개】신고개 위에 있는 고개
- 건넨골【골】마을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냉장골【골】흐릿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찬샘물이 나오므로 붙여진 이름
- 산지나무골【골】산제를 지내는 나무가 있는 골짜기(복쿠골이라고도 함)
- 안반텃골【골】되레지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방산진미골【골】작은 되레지고개 입구에 있는 골짜기
- 진막골【골】냉장골 밑에 있는 작은 골짜기
- 피아골【골】산지나무골 왼쪽 골짜기
- 배나무골【골】되레지고개 밑 우측 골짜기
- 가매골【골】안밭덧골 옆골짜기로 삼태기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 연애골【골】남쪽원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 폭포수골【골】흐리골 안막에 있는 골짜기
- 오리개들【들】흐리골 우측에 있는 골짜기
- 배나뭇들【들】전에 배나무가 있었다 함
- 수살배기들【들】배나무들 남쪽에 있는 들
- 도촌로(桃村路)【길】도촌리를 관통하는 길, 사변후 확장되어 포장까지 되었음
- 갓모바위【바위】흐리골안에 있으며 머리에 쓰는 갓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 넙적바우【바위】되레지고개 마루부근에 있는 바위로 아낙네들이 이 바위를 뛰어 넘으면 첫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음
구암리(九岩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거북바우가 있으므로 거북바우 또는 구암(龜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밧막골을 병합하여 구암리(九岩里)라 하였다.
- 거북바우【마을】구암리
- 구암(龜岩)【마을】구암리
- 밧막골【마을】막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로 외막동이라고도 함
- 막골【마을】골짜기의 막바지에 있는 마을
- 안막골【마을】막골 안쪽에 있는 마을
- 외막동(外幕洞)【마을】밧막골을 말함
- 내막동(內幕洞)【마을】안막골을 말함
- 선바우들【들】구암리와 죽리 경계에 있는 들로서 선바위가 있음
- 황인의터들【들】황씨들이 살던들로 마을이 있던 들
- 오얏버덩【들】황인의 터 뒤에 있는 들
- 처버터들【들】안막골 뒤에 있는 들
- 곧은 골【골】바른골, 골짜기가 곧게 뻗었다 함
- 옷골【골】전에 옷나무가 많이 있었던 골짜기
- 사랑골【골】밧막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사태골【골】사태가 난 일이 있는 골짜기
- 우묵골【골】우물이 많은 골짜기
- 음성골【골】사랑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언녕골【골】사태골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로 이판골이라고도 함
- 피란골【골】피란굴이 있는 골짜기
- 홍천덕골【골】피란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강신텃골【골】우묵골위 골짜기
- 아래 한개골【골】구암리 지목이 시작되는 골짜기
- 화채골【골】상여를 두는 골짜기
- 신뱅이골【골】내막동 상부에 있는 골짜기
- 햇논터【마을】밧막골 위에 속해 있으며 현재 월남촌 또는 새마을이라 함
- 월남촌【마을】새마을, 햇논터를 새로 부른 이름
- 갯모테이들【들】구암리 서쪽 산 머리에 있는 들
- 봉화산【산】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이산에서 봉화를 올려 붙여진 이름
- 매봉【산】웅봉, 우뚝솟아 매(새)를 보던 산이라 함
- 동막고개【고개】창리로 넘어가는 고개
- 가나무고개【고개】가나무(갈나무)가 많은 고개
- 신고개【고개】구암리에 있는 고개, 흰돌이 있던 고개
- 조소고개【고개】죽리로 넘어가는 고개
- 신바우【바위】바위 빛깔이 희므로 신바우 또는 영감바위라고도 불렀으며, 수복후에 군인들이 없앴음
- 차돌바우【바위】신바위, 영감바위를 말함
- 피란굴(避亂堀)【굴】옛날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란을 하였던 굴이라 함
죽리(竹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대월 또는 대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골, 골말, 느르믈, 딴봉, 버덩말, 숲말을 병합하여 죽리라 하였으며 1971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2리로 분리되었다.
- 청골〔갯골터〕【마을】죽리 동,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골말【마을】대월뒤에 있는 마을
- 느르믈【마을】유느골을 말함
- 유느골〔윤의동, 느르믈, 유고〕【마을】대월 남쪽에 있는 마을로 윤의동, 유고, 느르믈등으로 불러졌음
- 대울, 대월【마을】죽리(竹里)를 말하며 대죽자라하여 붙여진 이름
- 딴봉〔안봉〕【마을】죽리 남쪽에 있는 마을
- 버덩말〔유촌〕【마을】버덩에 있는 마을
- 유촌【마을】버덩말을 유촌이라고도 불렀음
- 숲말【마을】옛날에 숲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마을
- 청곡(晴谷)【골】갯골터 골짜기
- 도장골【골】갯골터 안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도장처럼 생겨져 붙여진 골짜기
- 못골【골】구암리와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
- 버버리골【골】옛날에 이골짜기에서 나는 약물을 먹고 버버리(벙어리)가 나왔다 함
- 복개골〔복구〕【골】지형이 복구형(伏狗形)이라 함
- 복구골【골】복개골을 말함
- 오강굴골【골】지형이 오강(요강)처럼 생겼다 함
- 구제비 집골【골】배나무골 우측 골짜기
- 배나무 골【골】심포리와 경계지역에 있는 골짜기
- 대내골【골】배나무골과 구제비집골 중간 골짜기
- 피난골【골】구암리와 경계지역에 있는 골짜기
- 서낭당골【골】숲말 위에 있는 골짜기
- 봉화산【산】남쪽에 위치한 큰산으로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산이라 함
- 지당봉【산】개골터 위에 있는 산
- 달봉【산】서낭당골위에 있으며 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던 봉우리
- 시켓버덩〔식해〕【들】게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태풍사격장을 말함
- 말머리를〔암머리〕【들】시켓버덩에 있는 들로 모양이 말머리처럼 생겼으며 암머리들이라고도 부르고 있음
- 언둔지【들】던에 언(堰)을 막았던 들, 유노골막에 있는 들
- 귀룽숲【숲】귀룽나무로 이루어진 숲, 옛날에는 이숲이 말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음
- 가나무 고개【고개】갈나무가 많이 있던 고개
- 조수고개【고개】구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 광판이 개울【내】양구읍과 경계를 이루는 소하천
- 선바우【바위】선바위들 남쪽에 산뿌리에 있는 바위로 원래 세층으로 우뚝 서 있었는데, 선조때 정송강(鄭松江)이 이곳을 지나다가 좋은 묘자리라하여 그 혈을 자르기 위해서 한 층을 없애버렸다 함
심포리(深浦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깊은 골짜기, 개울가에 있으므로 지픈개, 또는 심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웃말을 병합하여 심포리라 하였다.
- 심포(深浦)【마을】지픈개 본마을, 심포리
- 지픈개【마을】심포리 마을을 말함
- 안 지픈개, 내심포(內深浦)【마을】지픈개 안쪽에 있는 마을로 양구읍 석현리 위에 위치한 마을임
- 봉웃말〔봉호리〕【마을】봉화봉 밑에 있는 마을. 내심포로 넘어가기전에 있는 마을로 봉호리라고도 함
- 빗밑골【골】봉화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옹장골【골】봉화산 밑에 있는 골짜기 마을 동편에 있는 골짜기
- 팟밭골【골】지르메기고개 밑 골짜기
- 지개골【골】지개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골짜기
- 곽재봉【산】마을 서남쪽에 있는 산
- 각시봉【산】봉화산 능선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 군선의 등【등】마을 복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에 군선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살았다하며 현재 필리핀 전적비가 있음
- 마당골 넘는 고개【고개】명곶리 마당골로 넘어가는 고개
- 황두란 들【들】전에 소를 놓아 먹이던 곳으로 심포리 위에 있는 들임
- 호랑이 바우【바위】곽재봉 마루에 있는 바위로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
원리(院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이조때 원집이 있었으므로 원골 또는 원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촌(下村), 반장리(半場里), 중간촌(中間村)을 병합하여 원리라 하였으나 1971년 소양댐 수몰로 인하여 명곶리와 하촌, 중간촌(중간말) 모두가 침수가 되었다.
- 하촌(下村)【마을】아랫말(아래에 있는 마을)
- 반장리〔반쟁이〕【마을】되레지 고개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
- 중간촌(中間村)【마을】중간말, 원리 중간에 있는 마을
- 원골【마을】원리
- 원동【마을】원리
- 비끼내【마을】중간말 남쪽에 있는 마을(수몰됨)
- 머케울골【골】중간말과 반쟁이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방축골【골】전에 방축이 있었던 골짜기
- 비끼냇골【골】비끼내 뒤에 있는 골짜기
- 통골【골】인제군 남면 신월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 소락골【골】중간말 동쪽 골짜기
- 여냇골【골】반쟁이에 있으며, 되레지 고개로 가는 중간 골짜기
- 장강골【골】여랫골과 갈라지는 골짜기
- 우묵골【골】여랫골 밑에 있는 골짜기
- 벼락재골【골】우묵골 밑에 있는 골짜기
- 가둔지골【골】벼락재골 밑에 있는 골짜기
- 호텅골【골】아랫말에 있는 골짜기
- 호통골【골】도촌리와 경계에 있는 골짜기
- 되레지고개【고개】도촌리로 넘어가는 고개
- 새나짓고개【고개】인제군 남면 신월리로 넘어가는 고개
명관리(明串里)
본래 양구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멀리 소양강가에 있고 봉화산 넘어 떨어져있으므로 명호지(明湖地) 또는 명오지(외진곳)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란골, 절골, 폭탄리를 병합하여 명관리(명곶리)라 하였는데 1957년 수복후 원리로 편입되었다가 1971년 소양강댐 수몰로 전 마을이 침수됨
- 마란골〔마랑골, 마당골, 평동〕【마을】명오지 북동쪽 골짜기에 있었으며 옛날에 이곳에서 용마가 낫다하며 수몰후 주민들이 모두 타지방으로 이주함
- 명곶리【마을】명관리(明串里), 串자가 버릇관, 땅이름곳으로 명관리 또는 명곶리라 부르는데, 주민들은 명곶리라 부르고 있음(침수로 전마을이 이주)
- 명호지(明湖地), 명오지(明吾地)【마을】명곶리
- 절골〔사동〕【마을】마란골 동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 함
- 평동(萍洞)【마을】마란골(수몰지역임)
- 폭탄리【마을】절골 남쪽 소양강가에 있었으나 수몰되었음
두무리(斗武里)
본래 인제군 남면에 속해있었으나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구군 남면으로 편입된 지역으로서 두무동이라고도 부르며 46번 국도가 지나갔었으나 광치령 도로이설로 지방도로 변경된 지역이다.
- 진두루【마을】두무리 중간 지역으로 학교가 있는 마을
- 터골〔버덩〕【마을】두무리 중간지역으로 중간말이라 하며 진두루 위 마을임
- 중간말【마을】터골 또는 버덩마을을 말함
- 윗마을【마을】두무동고개 밑에 있는 마을
- 아랫마을【마을】두무리 맨 밑에 있는 마을
- 승지골【골】두무리 최남쪽에 있으며 인제군과 접해 있는 골짜기
- 자월골【골】인제군 신월리와 경계를 이룬 골짜기
- 갬지기골【골】자월골 맞은편 골짜기
- 절골【골】구박장골위 골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 함
- 구박장골【골】자월골 반대 골짜기
- 곧은 골〔직골〕【골】두무리 우측 제일 큰 골짜기
- 옷밭골【골】곧은골 입구에 있는 골짜기
- 단지골【골】곧은골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횟골【골】곧은골 위 골짜기
- 용오지골【골】신배나무골 밑 골짜기, 두무학교 위 골짜기
- 신배나무골【골】용오지골 위 골짜기
- 뒷골【골】신배나무골 위 골짜기
- 솔경지골【골】뒷골 위 골짜기
- 웃가매골【골】솔경지 맞은편 골짜기로 옛날에 숯을 구었다 함
- 칠보골【골】웃가매골 위 골짜기
- 몽골【골】칠보골 위 골짜기로 큰 몽골과 작은 몽골로 두 골짜기로 갈라져 있음
- 석정골【골】몽골 위 골짜기로 옛날에 돌무덤이 있었다 함
- 자작나무골【골】석정골 위 골짜기
- 짜개골【골】자작나무골 위 골짜기
- 신재골【골】짜개골 맞은편 골짜기
- 건넌골【골】산재골 위 골짜기
- 비둑재골【골】건넌골 위 골짜기
- 녹방골【골】비둑재골 위 골짜기
- 수수와 골【골】녹방골 맞은편 골짜기, 수사골이라고도 함
- 뒷터골【골】수사골 위 맞은편 골짜기
- 작은 병뱅이골【골】뒷터골 위 골짜기
- 큰 병뱅이골【골】작은 병뱅이골 맞은편 골짜기
- 큰 학수골【골】큰 새맥이 맞은편 위 골짜기
- 작은 학수골【골】큰 새맥이 위 골짜기
- 큰 새맥이【골】,【고개】청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고개
- 작은 새맥이【골】,【고개】원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고개
- 곰묵이골【골】작은 학수골 위 골짜기
- 무랑골【골】두무리 막바지 골짜기
- 쥐골【골】용소 위 골짜기
- 불당골【골】쥐골 위 골짜기
- 쉰섬내기골【골】불당골 맞은편 골짜기. 옛날에 조를 심으면 50섬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함
- 턱맥힌 골【골】벼락 바위 맞은편 골짜기
- 깃대봉【산】마을 입구 높은 봉우리로 인제군과 접해 있으며 옛날에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하며, 세부측량 당시 기점 깃대를 꽂은 곳이라고도 함
- 두무동 고개【고개】청리로 이어지는 고개. 46번 국도였으나 도로이설로 지방도가 되었으며 아스콘 포장이 되어있음
- 단지고개【고개】인제군 가로리(갯골)로 넘어가는 고개(곧은골로 들어와 단지골로 넘어감)
- 벼락바우【바위】흰골입구에 있으며 주저리모양으로 벼락을 첨가하여 붙여진 이름
- 굴바우【바위】흰골입구에 있으며 바위에 굴이 있음
- 범바우【바위】곧은골 중간 지점에 있으며 바위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있음(바위가 집더미만 함)
- 용소【소】범바우 위에 있는 소로 옛 전설에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함
- 고로쇠 나무【나무】두무리 중간 도로변에 있는 나무로 가을단풍이 아름다움
- 똥배나무【나무】고로쇠나무 옆에 있으며(자개골 앞도로변) 배맛이 냄새가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원나무가 죽으면 옆에서 새순이 자라 계속 이어져 옛날부터 이곳에서 자라고 있음)
상수내리(上水內里)
본래 양구군의 지역이었으나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하수내리(下水內里)
본래 양구군의 지역이었으나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동면(東面)
본래 양구군의 동쪽위에 위치하였다하여 上東面이라 이름하였으며 임당(林塘), 원당(元塘), 후곡(後谷), 지석(支石), 덕곡(德谷), 팔랑(八郞), 월운(月雲), 비아(比雅), 사태(沙汰)등 9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면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1978년 7월 1일부로 해안면을 동면으로 흡수 관리하다 1983년 2월 15일자로 해안면으로 승격 분리되어 현재 후곡리, 지석1.2리, 원당리, 덕곡1.2리, 임당1.2리, 월운리, 팔랑1.2리등 11개리를 관할하고 있다.
후곡리(後谷里)
동면의 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면의 적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수막, 샛말, 지정말을 병합하여 후곡리라 칭하였으며 일명 뒷골이라고도 한다.
- 곰의골【골】전에 곰이 살던 굴이 있었다 하여 곰의 골이라 함
- 구미턱골【골】모양이 여우처럼 생겼다하여 부름
- 다락골【골】지형이 다락처럼 생겼다하여 다락골이라 함
- 사시나무골【골】옛날 사시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부르는 골
- 송이잿등【골】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골짜기
- 신배나무골【골】신맛이나는 야생 돌배나무가 자생했던 골짜기
- 안동【골】지렛골 또는 기러기골
- 지례골【골】지석리와 인접지역에 있는 골짜기
- 녹갯골【골】큰 봉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웃골【마을】후곡의 위쪽에 있는 마을
- 윤도락골【골】신배나무골 뒤에 있는 골짜기 일명 다락골
- 정직골【골】후곡리에 있는 골짜기
- 큰봉골【골】봉우리가 높은 산골짜기
- 흐릿골【골】침침하고 어두운 골짜기 해가나지 않으면 침침함
- 각시바위【바위】능아재에 있는 바위로서 그 모양이 각시와 같이 생김.
- 곡콜재【산】후곡리에 있는 산
- 능아재【들】지검말 앞에 있는 들
- 된보【보】산골짜기 꼭대기의 물을 이용한 보
- 드렁솟보【보】능아재위에 있는 보
- 마당재【산】산위에 마당처럼 넓은 들이 있는 산
- 말등바우【바위】생긴모양이 말의 등 같다하여 부르는 바우 이름
- 맷돌 바우【바위】가정에서 사용하는 맷돌같이 생겼다하여 부름
- 무수막【마을】무수매기 골에 있는 마을. 일명 무수매기
- 무쇠점골【골】무수막으로가는 중간에 있으며 오랜 옛날부터 1950년 6월 25일전까지 이곳에서 무쇠로 가마솥, 농기구의 일종인 버섭, 벳, 무쇠냄비등을 만들었던 곳
- 범바우【바위】그 모양이 호랑이와 같이 생겨 범바위라 함
- 서암【바위】생긴 모양이 책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겼기에 이름 함. 옛날에 임시 야전사당으로 글을 그곳에서 배웠음
- 웃골【마을】후곡리 약수터 마을
- 원당고개【고개】원당리로 넘어가는 고개
- 지검마을【마을】각시바우 위에 있는 마을
- 지촌【마을】지검마을
- 책바우【바위】서암
- 청룡안【들】뒷골 청룡 안쪽에 있는 들. 지렛골밑에 있는 들
- 해안선【길】해안으로 가는 길
- 안동골【골】흐리골로 가는 깉에 있는 골
- 말새끼난골【골】옛날 그곳에서 말이 새끼를 낳아다하여 부르는 골
지석리(支石里)
본래 양구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마을 가운데 괸돌이 있었으므로 괸돌 또는 지석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진램이, 지레골, 양지말을 병합하여 지석리라 하였다.
- 괸돌지, 괸돌【리】지석리
- 지례골【골】안동 또는 기러기 골
- 가마소【소】모양이 가마처럼 생긴 소. 현재 매몰되고 없음
- 개사릿보【보】서천가에 있는 보
- 개구빗골【골】지렛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거렁골【골】지렛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공동묘골【골】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
- 기와집마을【마을】양짓말, 양지마을
- 되방골【골】지렛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된도랑보【보】서천에 있는 보로서 경사가 심한 도수로가 있음
- 망금재들【들】괸돌의 남쪽에 있는 들
- 문지방바우골【골】돌배나무(야생)가 많아서 부른 지면
- 버들무기【골】버드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골짜기
- 보랫골【골】지렛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사랑골【골】지렛골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옛날 남여가 사랑을 함
- 산제텃골【골】옛날 산제를 지내던 터가 있었음
- 샘보【보】자연샘을 이용한 보
- 석동골【골】지렛골 뒤에 있는 골짜기
- 선달고개【고개】일명 소리고개, 솔고개. 양구읍 한전-도사리로 가는 샛 고개
- 송현고개【고개】소리고개, 솔고개
- 아갈바우【바위】서천가에 있으며 그 모양이 짐승이 입을 벌린것처럼 생겼다하여 아갈바우라 부름
- 아래석동골【골】석동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 양짓말【마을】일명 양지촌 또는 기와집 마을이라하며 기와집이 많이 있었음
- 영등발골【골】지렛골 뒤에 있는 골짜기
- 웃군내들【들】기와집마을 앞에 있는 들
- 작은 선달골【골】선달골 옆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잔대미앞【】일명 잔대미라고하며 본 마을 위에 있는 말. 각담(작은 돌무덤)이 많았음
- 장군봉【산】지렛골 뒤에 있는 산봉우리
- 장똑넉골【골】지렛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장자짓골【골】전에 갈가지(일명 개호주)가 많이 있었음
- 정짓골【골】지렛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지렛골【골】일명 기러기골 또는 안동이라고 하며 모양이 기러기가 떨어진 형극이라 함
- 겁뒷골【골】지렛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최풍헌네윗골【골】최풍헌의 무덤이 있는 골짜기
- 코쿨잿골【골】지렛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큰보【보】지석리 서천에 있는 큰보
- 탑고개【고개】탑골 뒤에 있는 고개. 옛날에 탑이 있었다 함
- 탑골【골】기와집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었다 함
원당리(元塘里)
본래 양구군 상동면의 중간에 있는 지역으로서 옛날에 원당이 있었으므로 원당 또는 원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다락골, 독골을 병합하여 원당리라 하였다.
- 푼둑골【골】봉화정씨 20대 선조 묘가 푼둑골에 있음
- 가매소【소】가마처럼 생긴 소가 있었음. 현재는 매몰되고 없음
- 가매소양짓골【골】가매소가 있는 양지쪽 골짜기
- 광시미재산【산】옛날 이산에서 한약재 일종인 복령(茯苓) 1000냥쯤을 캤다 함
- 녹전마을【마을】싹 밭
- 다락골【마을】다락골에 있는 마을. 지형이 다락처럼 생겼다하여 부쳐진 이름
- 독골마을【마을】독골(獨谷) 원랭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마을과 외따로 떨어진 골짜기에 단 그 집만이 있었다 함
- 동산앞골【골】원당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되렁개골【골】원당 뒤에 있는 골짜기
- 된둔지골【골】지형이 경사가 매우 심하다 함
- 말씹골【골】지형이 암 말의 생식기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부름
- 먼양지골【골】일명 못 양지골이며 전에 못이 있던 양지쪽에 있는 골짜기
- 무랑골【골】수펑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무랑앳둔지들【들】옛날 물레방아가 있던 들
- 무릉잿봉【산】일명 숲끝봉이며 원댕이 서남쪽에 있는 산봉
- 무수막고개【고개】무수막(후곡리)으로 가는 고개
- 사태골【골】산사태가 자꾸 난다하여 부쳐진 이름
- 삼밭골【골】펀데기 뒤에 있는 골짜기
- 샘골【골】샘이 많이 나는 골짜기(임당리지역)
- 바우배긴골【골】석장골 옆에 있는 산골짜기
- 샘골고개【고개】임당리 샘골로가는 고개
- 석장골들【들】전에 돌로 된 석장(石葬)이 있었다 함
- 석장골【골】말씹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수펑골【골】숲이 무성한 골짜기
- 숲가매골【골】옛날 이곳에 나무로 숲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함
- 숩문봉【산】무릉재봉
- 싹밭(녹전)마을【마을】펀데기 옆에 있는 마을
- 어랭이들【들】원당 동남쪽에 있는 들
- 어려니산【산】원댕이 동쪽에 있는 산
- 엄나무배기골【골】옛날에 엄나무가 많이 서식하였던 곳
- 원당마을【마을】원당리 일명 원댕이
- 절텃골【골】옛날 절이 있었다는 골짜기
- 좁은 골【골】골짜기가 좁음
- 종자리골【골】뒷골(후곡리)과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지르네미(지어동)골【골】지르네미 밑에 있는 골짜기
- 춘새골【골】팝밭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치락개들【들】곽골 옆에 있는 들
- 큰가는 골【골】그늘이 크게 지는 골짜기(독골로 가는 곳)
- 큰 골들【들】큰골짜기 밑에 있는 들
- 텃자리들【들】옛날 집터가 있던 들
- 퉁퉁바우【산】바우가 퉁퉁하게 생긴 것이 있는 산
- 팟골【골】원당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팥밭골【골】원당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펀데기골【골】다락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평풍석 바우【바위】그 모양이 평풍을 닮았다하여 부쳐진 이름
- 푼둑골【골】초당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한배미보【보】임당리와의 경계에 있는 보
- 홍오보【보】덕곡리 앞에 있는 보
- 화채집골【골】상여를 보관하는 집에 있는 골짜기
- 샘보【보】한배미들에 있는 보
덕곡리(德谷里)
덕골 또는 덕곡이라고 하며 양구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덕곡리라고 하였으며, 예부터 이곳 주민들은 덕성이 바르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덕이 있는 골이라하여 덕곡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 가래골【골】두밀령밑에 있는 골짜기로 가래나무가 많이 서식했음
- 검은 돌 배기골【골】이지역에 검은 돌이 많이 땅에 박혀 있다 함
- 고지기골【골】부처님옆에 있는 골짜기
- 공동묏골【골】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
- 대정고개【고개】두밀령
- 덕고개【고개】덕골에서 대정고개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고개
- 덕골 또는 덕곡【마을】덕곡리를 칭함
- 두밀령【고개】대정고개라고도 하며 덕곡 북쪽에 있는 고개
- 방산골【골】방산(方山)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골짜기
- 베틀바우굴【굴】옛날 굴안에서 난리를 피해 베틀을 차려놓고 베를 짷다 함
- 부처님골【골】옛날에 절이 있다 함(지금은 없음)
- 상덕곡【마을】웃 덕곡
- 신답들【들】새로 논을 만든 들
- 신평【들】신답들
- 아래덕골【마을】덕곡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웃군내들【들】지석리와의 사이에 있는 들
- 웃덕골【마을】덕곡 위쪽에 있는 마을
- 원두턱골【골】부처님골과 공동 묏골사이에 있는 골짜기
- 망태골【골】지금으로부터 약 400년전 강릉김씨라는 부지런한 한 선비가 이곳에 와보니 산세가 좋아 이곳에서 살기를 마음먹고 이곳에 짐망태를 벗어 놓았다하여 짐망태골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또한 일설에는 이곳에 짐을 벗어놓은 김씨가 근면하고 건실하여 항상 망태를 지고 다녔다 하여(옛날에는 김씨를 검씨로도 발음하였음) 짐망태골이라고 하는 설이 있음
- 작은 짐망태골【골】큰 짐망태 옆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장기고개【고개】일명 장가현이라고도 하며 방산면과 양구읍으로 가는 고개
- 큰짐망태【골】옛날 부자김씨가 살았다는 골짜기
- 하덕곡【마을】아래덕골
- 해산바우【골】일명베틀바우골이라고도 하며 옛날 난리때 굴안에서 베를 짜다가 아이를 낳았다하여 해산 바우골이라고도 함
- 도독막골【골】옛날에 도둑들이 움막을 치고 살았다 함
- 승지골【골】옛날 승지 벼슬하던 사람이 낙향하여 그곳에서 살았다 함. 덕고개 넘어 있는 골
- 여우난골【골】옛날에 여우가 새끼를 치고(낳고) 살았다 함
- 분투골【골】방산골로 가는 우측골짜기
- 극심이지골【골】방산골로 가는 좌측에 있는 골짜기
- 미내골【골】지석리 경계에 있는 골짜기
임당리(林塘里)
예로부터 쑥댕이, 임당, 임댕이라고 불려왔으며 양구군 상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갯말, 골말, 구화골, 죽개골을 병합하여 임당리라 하였다.
- 가는골【골】가늘게 생긴 골짜기
- 가래골【골】가래나무가 많이 서식하였다하여 가래골임
- 가래골고개【고개】가래골에 있는 고개
- 갓맹골【골】부엉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개두둑들【들】개울옆에 있는 들
- 갯말【마을】개울옆에 있는 마을
- 곡촌(谷村)【마을】골말
- 골말【마을】일명 곡촌, 현촌, 골쑥댕이, 마을이라하며 쑥댕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고을(縣)이 있던 곳이라고도 함
- 골쑥댕이【마을】골말
- 곽골【마을】일명 구화골, 구화곡 마을이라고도하며 갯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
- 곽골골【골】곽골 뒤에 있는 골짜기
- 구소골【골】갯마을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 구화곡마을【마을】곽골
- 너리안골【골】골짜기가 넓음
- 느름나무쟁이마을【마을】느름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마을
- 돈둑골【골】곽골과 미밋골 중간에 있는 골짜기
- 둔짓보【보】둔지에 있는 보
- 마릉보【골】골말 뒤에 있는 골짜기
- 방앳보【보】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만든 보
- 배나무골【골】옛날에 돌배나무가 많이 자생하던 곳
- 버들발골【골】버들강아지 나무가 많이 자생하던곳
- 부엉골【골】옛날에 부엉이가 살며 새끼를 쳤다함
- 부엉바우【바위】부엉골 안에 있는 작은 바위
- 서낭골【골】서낭당이 있었던 골짜기
- 쑥댕이【마을】임당리를 옛말로 부르는 말
- 옥대골【마을】옥터
- 옥터(獄垈)【마을】임당1리 앞에 있는 틀을 가리켜 옥터라 불려왔는데 이조중기 상동면의 소재지로서 죄인을 교화하기 위해 설치한 감옥이 있었다하여 이름한 곳으로 임당 또는 현임당이라고 불려져 왔다. 이 때문에 이곳에 이사오는 사람들마다 옥터라는 지명이 부르고 듣기가 나쁘고 불길하다 해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 옹장골【골】너리안 어귀에 있는 골짜기
- 원방골【골】구도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원수터골【골】옛날 이곳에 원씨가 놋쇠로 다리를 놓고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함
- 임당마을【마을】임당리(林塘里)
- 임댕이마을【마을】임당리
- 잣나무골【골】예전에 잣나무가 많이 있었다 함
- 죽개골마을【마을】일명 죽포동이라고도 하며 죽개골
- 죽포동(竹浦洞)【마을】죽개골
- 지누골【골】예전에 진씨성을 갖은 부자가 살았다는 골짜기
- 큰말【마을】임당리에서 제일 큰 마을
- 투전바우【바위】예전에 노름꾼들이 이 바우위에서 하였다 함
- 밭골【골】골말 꼭대기에 있는 골짜기
- 하웃보【보】둥짓보와 방앳보 중간에 있는 보
- 한배미들【들】예전에 이들에 논이 한배미 뿐이었다 함
- 한배밋보【보】한배미에 있는 보
- 현임당(縣林塘)【마을】골말
- 현촌(縣村)【마을】골말
- 호랑골【골】옛날에 이곳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골
- 호암소【소】갯마을 앞에 있었으나 매몰되어 지금은 없음
팔랑리(八郞里)
양구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바랑(물건을 넣고 지고 다니는 가방)처럼 생겼다 하여 부른 이름으로 바랑골이라고도 하며 또는 팔랑동이라 한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느림골, 무학, 범바우, 돌고지, 자작정, 갈조동, 송림말, 막은골등을 병합하여 팔랑리라 하였다.
- 가리점말【마을】일명 갈조동, 마조동, 마조촌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가리그릇을 만들던 곳이라 함. 목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갈아서 만들었다 하여 가리점마을이라 함
- 갈조동【마을】가리점말
- 고무덕골【골】옛날 곰의 덫을 놓았던 골짜기
- 태덕동(態德洞)골【골】고무덕골
- 느정골【골】만정동 느쟁이라고도하며 옛날 어떤 선비가 그의 말년에 이곳에다 정자를 세웠다 함
- 돌고지마을【마을】일명 돌고지라고도하며 자작성 서쪽에 있는 마을. 냇가에 있음
- 돌산령 고개【고개】일명 석산령이라고도 하며 산에 돌이 많으며 해안면으로 가는 길
- 두태(豆太)바우【바위】두탯바우
- 마근골마을【마을】일명 막은골, 막은동이라고도 하며 팔랑리에서 맨 동쪽에 있는 마을
- 마조동마을【마을】가리점마을을 말하며 마조촌이라고도 함. 말을 기르던 곳이라고도 함
- 막은동(幕隱洞) 마을【마을】막은골이라고도 하며 막음골이라고도 함
- 만정동(晩亭洞) 마을【마을】노정골
- 무쇠막마을【마을】옛날 무쇠점이 있었던 골짜기
- 무학동(舞鶴洞)마을【마을】지형이 학이 춤을 추는 형극이라 함
- 바랑골마을【마을】팔랑리 중이 가지고 다니던 바랑과 같다하여 부름
- 호암(虎岩)마을【마을】범바우마을
- 범바우 마을【마을】범 바우가 있는 마을. 옛날 이 바위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하여 부름
- 불당골【골】예전에 이곳에 불당이 있었다 함
- 사태둔지골【골】새태메기
- 새태메기【골】사태가 잘나는 골짜기. 일명 사태메기 골이라 함
- 샘잿골〔신암자〕【골】심곡사 옆에 있는 골짜기. 암자를 새로 지었다 하여 신암자(新庵子)라 함
- 설텃고개【고개】팔랑리 중앙에 있는 고개
- 속개〔이포〕【들】마을 안쪽에 있는 들
- 송림말【마을】송림촌이라고도하며 숲이 마을 주위에 무성하여 부르는 이름
- 신암자골【골】새암자 골
- 심곡사(深谷寺)【절】도솔산(兜率山) 아래 있던 절
- 약물바우【바위】일명 약수암이라고도하며 바우밑에 좋은샘이 있음
- 약수암(藥水岩)【바우】약물바우
- 용늪【못】대암산 정상에 있는 못, 늪지대 옛날에 용이 살았다 함
- 이포들【들】속개들
- 자작정마을【마을】옛날에 자작나무가 많이 자생했다 함
- 장개골【골】예전에 힘이센 장사가 살았다는 골짜기
- 조촌(趙村)마을【마을】예전에 조씨가 많이 살았다고 함
- 직소(直消)【소】물이 내려떨어져 폭포밑에 생긴 깊은 소
- 직연(直淵)【소】직소
- 천학의 벌【들】천학평
- 천학평(天鶴平)【들】일명 천학평 또는 천학들이라고 하며 옛날 이곳에 많은 학이 내렸다 함
- 함병별마을【마을】황봉평
- 황봉평(黃蓬坪)마을【마을】일명 함병평마을이라고도 하며 넓은 벌판에 자리한 마을
비아리(比雅里)
일명 비아동이라고도하며 본래 양구군 상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드렛골, 대미댕이를 병합하여 비아리라고 하였는데,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과 함께 완충지역으로 주민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 구현(鳩峴)고개【고개】비둑고개
- 느젱잇골【골】비아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대미랭이【마을】팔랑리와 접경에 있는 마을
- 뒷미기골【골】비아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드렛골〔야어동, 야수동〕【마을】진고개 서쪽에 있는 마을
- 비둑고개【고개】일명 비둘기고개 또는 구현고개라고도 하며 고개마루가 비둘기 목처럼 생겼다 함
- 비둘기고개【고개】비둑고개
- 비아동(比雅洞)【마을】드렛골
- 아랫드렛골【마을】하야어동이라고도하며 드렛골 아래쪽 마을
- 야수동(野水洞)【마을】드렛골
- 야어동(野於洞)【마을】드렛골
- 진고개【고개】일명 진현이라고도 하며 옛 난리때 진(陣)을 쳤던 곳임
- 하야어동(下野於洞)【마을】아랫드레골
사태리(沙汰里)
일명 사태동(沙汰洞)이라고도 하며 양구군 상동면 지역으로서 사태가 많이 나므로 사태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목, 뒷목이 삼태동을 병합하여 사태리라 하였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1953년 휴전과 함께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으로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
- 단령(檀嶺)고개【고개】박달고개
- 돌산령고개【고개】해안면으로 가는 고개
- 두물령(杜物嶺)고개【고개】두밀령 고개
- 두밀고개【고개】두밀령
- 두밀령고개【고개】일명 두물령 또는 두밀 고개라고 하며 해안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 뒷목이 마을【마을】후앙곡이라고도 하며 박달고개 남쪽에 있는 마을
- 박달고개【고개】일명 단령이라고도하며 박달나무가 많았음
- 사태동(沙汰洞)【마을】사태리
- 삼태동(三台洞)【마을】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
- 새목이마을【마을】지형이 새의 목처럼 생겼다 함
- 쌍두두령(雙頭頭領)【고개】가칠봉(加七峰) 서쪽에 있는 고개
- 후항곡마을【마을】뒷목이 마을
월운리(月雲里)
일명 달운리라고도 하며 양구군 상동면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달운 또는 월운동(月雲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갯말, 뒷말, 뒷버덩, 암잣골, 양짓말을 병합하여 월운리라 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46번 국도가 마을안을 지나 비득고개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이라도 통일이 되어 왕래할 수 있다면 비아, 사태, 문등을 경유하면 금강산이 걸어서도 하루에 갈 수 있는 길이다.
- 가잿새산【산】양짓말 북쪽에 있는 산
- 갈밭골【골】옛날에 갈대밭이었던 골짜기
- 갯말【마을】개울가에 있는 마을
- 농바우골【골】뒷버덩에 있는 골짜기
- 달운【마을】월운
- 더랭이산【산】아랫마을에 있는 산
- 돌떨어진골【골】옛날에 큰 돌이 떨어졌던 골짜기
- 두밀【마을】뒤밀
- 보골【골】아랫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두밀고개【고개】두밀령
- 뒤밀(두밀)마을【마을】달운 서쪽에 있는 마을
- 뒷버덩마을【마을】뒷버덩에 있는 마을
- 뒷버덩들【들】달운 뒤에 있는 들
- 새낭골【골】수챗골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
- 생금바우골【골】비득고개로 넘어가는 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서낭골【골】서낭당이 있었던 골짜기
- 속골【골】충군의 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수챗골【골】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던 골짜기
- 아랫말【마을】월운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안산골【골】새냥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암자골【골】옛날 암자가 있었던 골짜기
- 양짓말【마을】양지쪽에 있는 마을
- 오방골【골】뒷버덩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오약골【골】갈밭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우묵골【골】응달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웃말【마을】월운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지장고개【고개】팔랑리로 가는 고개
- 충군의골【골】월운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큰서둑 골【골】뒷버덩에 있는 골짜기
방산면(方山面)
양구군 네면중 하나로 본래 고구려의 삼현현(三峴縣) 또는 밀파혜(密波兮)의 지역인데 신라경덕왕 16년(757)에 삼령현(三嶺縣)으로 고쳐서 양록군(楊麓郡)의 속현이 되고 고려때 방산현(方山縣)으로 고쳐 회양군(淮陽郡)에 딸렸다가 이조 세종6년(1424)에 다시 방원으로 재차 개칭하여 양구군(楊口郡)속하고 구후현을 없애고 방산면(方山面)이 되어 장평(長坪), 칠전(漆田), 현리(縣里), 금악(金岳), 오미(五味), 천미(天尾), 송현(松峴), 고방산(古方山), 건솔(乾率)의 9개리를 관할하였으나, 1945년~1950년에 이르기까지 공산치하에 강점되어 통치를 받았으나 6.25때 탄환하여 1954년 3월부터 군정을 실시하다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을 이야받아 6개리 31반이였으나 1971년 송현리가 1.2로 나누워 지면서 7개리 31개반을 개편되었다.
오미리(五味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므로 오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러니, 송서울, 도중골, 피모개, 중간말, 낭구미, 움텃골, 남밭, 안터를 병합하여 오미리라 하였다.
- 가는골【골】가늘게 생긴 골짜기
- 각시-고개【고개】전에 어느 겨울에 각시가 가마를 타고 이 고래를 넘어가다 얼어죽었다 함
- 개재-비냥【산】낭떠러지기가 진산, 전에 개가 떨어져 죽었다 함
- 굽둥-골【골】골이 구불구불하게 생긴 골짜기
- 남바-치〔남전동〕【마을】쪽밭이 많았다 함
- 남전-동(湳田洞)【마을】남바치
- 낭-꾸미(浪龜尾)【마을】물가의 후미진 곳에 있는 마을
- 도중-골【마을】움텃골 북쪽에 있는 마을
- 매봉-재【산】모양이 매처럼 생겼다 함
- 맷짓-녕【고개】이곳에서 매(寐)를 받았다 함
- 벼락-바우【바위】전에 벼락을 맞았다는 바위
- 송-서울【마을】도중골 북쪽에 있는 마을. 서울에서 온 송씨가 살았다 함
- 송서울-령【고개】송서울에 있는 고개
- 수러니-고개【고개】오미리와 금악리 중간에 있는 고개
- 안-대(安垈)【마을】안터
- 안-터〔안대〕【마을】남바치 서쪽에 있는 마을. 수입천 안쪽이 됨
- 오미리 수러니〔오미리 술원동〕【마을】중간말 북쪽에 있는 마을. 금악리 수러니와 구별하여 오미리 수러니라 함
- 오미리 술원동(五味里 術元洞)【마을】오미리 수러니
- 오밋령〔오미령〕【고개】오미 남쪽에 있는 고개. 엣날 아들을 읽고 찾아 다니던 어머니가 이곳에서 얼어 죽었다 함
- 오밋령-골【골】오밋령 바로 밑에 있는 골짜기
- 음무-성(蔭茂城)【산】남바치 부근에 있는 산
- 음텃-골〔은대곡〕【마을】화천군과 접경부근에 있는 마을, 움집이 있었다 함
- 은대-곡(隱垈谷)【마을】움텃골
- 중간-말【마을】오미리와 피모재 사이에 있는 마을
- 진-소【소】길쭉하게 생긴소
- 진-양지【마을】지형이 길게 생긴 마을. 양지쪽이 됨
- 피모-개【마을】피나무가 많은 마을
금악리(金岳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사기를 굽는 막이 있었으므로 사기막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사금막(沙金幕)을 줄여서 금막(金幕)이 되었는데 방산사기그릇을 고령토의 질이 좋아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는데 지금도 방산 금악리 자기는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어 수집가들의 귀중한 보물로 되어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슬원, 골말, 버덩말, 성공을 병합하여 금악리라 하였다.
- 가마봉【산】꽃봉의 상봉을 가르키는 이름
- 간-평(間坪)【마을】버덩마을
- 갈-골【골】공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갈매-골【골】논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꼬부랑-고개【고개】길이 굽어져 있는 고개
- 곡-촌(谷村)【마을】골말
- 골-개울【내】골말에서 흘러나오는 개울
- 골말〔곡촌〕【마을】골짜기에 있는 마을
- 공-골【골】예전에 불공을 드렸다는 골짜기
- 금-막(金幕)【마을】금악리
- 금악리 술원동〔금악리 술원이〕【마을】금악리 서북쪽에 있는 미수복지구. 오미리의 술원이와 구별하여 금악리를 붙여부름
- 논-골【골】논이 많은 골짜기
- 논골-개울【내】논꼴에서 흐르는 내
- 덕-밭【골】덕이 진 골짜기
- 도노-소【소】물이 빙빙 돈다 함
- 말비-소【소】옛날 이무기가 있어서 부근에 소나 말을 메어 놓으면 잡아 먹었다는 소
- 방산로(方山路)【길】금악리에서 방산으로 통하는 길
- 버덩-말〔평촌, 간평〕【마을】들판에 있는 마을
- 병막-골【골】모양이 병처럼 생겼다는 골
- 북박-골【골】이곳에 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함
- 사그네-골【골】옛날에 이곳에서 고령토를 팠는데, 도백(道佰)이 시찰을 와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산이 무너져서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함
- 사금-막(沙金幕)【마을】금악리
- 새-발【골】새풀이 많은 골짜기
- 서-삼각(西三角)【산】현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세부측량때 깃점이 되는 삼각기를 꽂았음
- 성-곡【마을】성골
- 성곡-령【고개】성꼴령
- 성꼴〔성곡〕【마을】성처럼 생겼다는 마을
- 성꼴-령〔성곡령, 오백사고지〕【고개】양구면 단량리(單糧里)로 넘어가는 고개, 산의 높이에 따라 504고지라 부름
- 수칫-개울【내】병막골에서 흐르는 내
- 안-말【마을】안쪽에 위치한 마을
- 여우-고개【고개】현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이 고개에 여우가 자주 나타나서 사람의 혼을 뻗어 혼절시켰다 함
- 영감-바우【바위】바위가 희다하여 생긴 이름
- 영감바우-소【소】영감바우 밑에 있는 소
- 오백사-고지【고개】성꼴령
- 웃-드루【들】윗쪽에 있는 들
- 절텃-골【골】절터가 있는 골짜기
- 조고지-골【골】현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충건-산【산】골말 뒤에 있는 산
- 큰-고개【고개】골말과 금악리 술원이와의 사이에 있는 고개
- 큰집밭-골【골】마을에서 가장 큰 집을 가진 사람의 밭이 이곳에 있었다 함
- 평-촌(坪村)【마을】버텅말
- 화랑-소【소】옛날에 화랑이 목욕을 했다 함
- 화채-봉【산】모양이 상여처럼 생겼다 함
- 화채-소【소】말바소 위에 있는 소. 화채봉 밑이 됨
현리(縣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고려때 방산현(方山縣)이 고방산리(古方山里)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겼으므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춘말, 동님, 동매기를 병합하여 현리라 하였다.
- 가마-소【소】가마처럼 생긴소
- 갈매-골【골】선안에 있는 골짜기
- 고대장네밋-골【골】전에 대장간을 하던 고씨의 묘가 있던 골짜기
- 고촌말【마을】전에 대장간을 하던 고씨가 살던 마을
- 단지골【골】새버덩 밑에 있는 골짜기
- 귀영-소【소】귀영(구유)처럼 생긴 소
- 는샛-들【들】옛 면사무소 뒤에 있는 들
- 당-되【골】영우 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더방-골【골】전에 대방(농악의 지휘자)가 살던 골짜기
- 드살령【고개】도사리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 돌-고개【고개】돌아가는 고개
- 동님-이【마을】웇밭골, 동쪽에 있는 마을
- 동-매기【마을】천미리와 사이에 있는 마을
- 뒤-두루〔후평〕【들】학재 뒤에 있는 들
- 무무당의 집-골【골】예전에 미륵을 세웠던 골짜기
- 밤나무-골【골】전에 이곳에 밤나무가 많았다 함
- 뱀골【골】뱀이 많다는 골짜기
- 사당-벌【들】전에 무당이 살았던 들
- 더-버덩【산】동매기 밑에 있는 산
- 선바웃-골【골】선바우가 있는 골짜기
- 선-안【마을】현리
- 솟대-배기【골】옛날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어서 솟대를 세웠던 골짜기
- 신배나무-골【골】신배나무가 있던 골짜기
- 여우-고개【고개】옛날에 여우가 자주 나타났던 고개
- 옻밭-골〔칠전〕【골】전에 옻나무가 많았다 함
- 우-심(雨心)【산】피시미
- 절-골【골】전에 절이 있었다 함
- 즈그짓-골【골】선안에 있는 골짜기
- 참나무집-골【골】참나무가 많은 골짜기
- 창앞-들〔창전평〕【들】옛날에 창고가 있었음
- 창전-평(倉前坪)【들】창앞들
- 칠-전(漆田)【들】옻밭골
- 통-골【골】외통이 된 골짜기
- 통전-골【골】옛날에 전투를 하였던 골짜기
- 피나무-소【소】소 부근에 피나무가 서 있음
- 피시-미〔우심〕【산】이산에 피나무가 서 있음
- 학-재【산】산형이 학처럼 생겼다 함
- 현-안【마을】현리
- 홍수-메기【고개】금악리로 가는 고개
- 화채집-골【골】전에 화채(상여)집이 있던 골짜기
- 후-평(後坪)【들】뒷두루
장평리(長坪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넓고 긴 들이 있으므로 진두루 또는 장평(장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샛말, 자원, 선은골을 병합하여 장평리라 하였다.
- 간촌(間村)【마을】샛발
- 고재-터【골】수채골 밑에 있는 골짜기
- 곱장-소【소】구부정하게 생긴 소
- 구가-보【보】구(具)가 가둔 보
- 구답(舊畓)-들【들】오래된 논이 많은 들
- 구삿-다랭이【골】중의 밭골 안에 있는 골짜기. 구새통처럼 생겼다 함
- 궁노-동(弓努洞)【마을】선우골
- 다릿목-소【소】다리 부근에 있는 소
- 담배-소【소】삿갓소 아래에 있는 소
- 대-통【산】옻밭골 부근에 있는 산
- 덕-둔지【산】산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고 함
- 동돗-보【보】대장간을 하던 박장군이라는 기운센 사람이 만든 보, 지금도 해마다 박장군에게 치성을 드리는 동두보제를 지내고 있다 함
- 떡바우-소【소】떡치는 바우가 있는 소
- 뚝진-머루【마을】던둔지 밑에 있는 마을. 지형이 뚝지란 고기의 대가리처럼 생겼다 함
- 비우-배기〔철갑산〕【산】바위가 많은 산
- 박달-수통【들】박달나무로 된 수통이 있던 들
- 삼끗-소【소】산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소
- 샛-말〔간촌〕【마을】진두루 북쪽에 있는 마을
- 서낭-댕이【마을】전에 서낭이 있던 마을
- 선우-곡【골】선우골
- 선우-골〔선우곡, 궁노동〕【마을】전에 산 짐승을 잡기위해 이곳에 선우덫을 놓았다 함
- 수챗-골〔제당골〕【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아랫-진두루【마을】째작정이
- 옻밭골-보【보】현리 옻밭골(漆田洞)로 대는 보
- 응달말【마을】자월
- 이세밭-골【골】옛날 면(面) 소유의 밭이 있었던 골짜기
- 자래기-나드리【여울】이곳에서 보면 두리봉 머리가 자라처럼 보인다 함
- 자월(自月)〔옹달말〕【마을】진두루 동쪽에 있는 마을
- 제당-골【골】수챗골
- 중의 밭-골【골】전에 중외 밭이 있었다는 골짜기
- 지대-소【소】다릿목소 밑에 있는 소
- 직소-폭포(直沼瀑布)〔직연폭포, 직연폭〕【폭포】진두루 남쪽에 있는 폭포, 폭포가 내리질러서 소가 되었음
- 직연-폭【폭포】직소폭포
- 직연-폭포(直淵瀑布)【폭포】직소폭포
- 진-두루【마을】장평리
- 재작-정이〔아랫진두루〕【마을】전에 자작나무가 많았음
- 찍-소【소】직소 폭포 밑에 있는 소. 옆에 굴이 있어 칠전리와 통한다 함
- 철갑-산(鐵甲山)【산】바우배기
- 호랑-바우【바위】옛날에 호랑이가 와서 앉았었다는 바위
송현리(松峴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소나무가 많으므로 솔재, 소재 또는 송현(松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돈두루, 문장골, 솔골, 안궁골, 점말, 학령골, 등매동, 어두원리, 응달말을 병합하여 송현리라 하였으며 1954년 양구군 행정권 이양과 동시에 고방산리를 병합하여 송현2리로 편입되었다.
- 가운데-텃골【골】매나 텃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곱슬-메【골】학령 왼쪽에 있는 골짜기
- 귕-소【소】구유처럼 생긴 소
- 꼬갈-바우【바우】바위모양이 고깔처럼 생겼다 함
- 내-궁곡(內弓谷)【마을】안궁골
- 돈-드루〔전평〕【마을】소재 동쪽에 있는 마을
- 전-평(錢坪)【마을】돈드루
- 동둣-버들【들】장평리와의 경계에 있는 들
- 돌뭇-골〔등매동〕【마을】어두어니 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刑)이라 함
- 등매-동(登梅洞)【마을】들뭇골
- 매나텃-골【골】“매화낙지형”(梅花落地刑)이 있다 함
- 문-바우【바우】문처럼 생긴 바위
- 문장-곡(文章谷)【마을】소재 동쪽에 있는 마을
- 사기-점【마을】점말
- 서낭-댕이【골】전에 서낭당이 있던 골짜기
- 성꼴-령【고개】천미리로 넘어가는 고개
- 성-뱅이【골】서낭당 옆에 있는 골짜기
- 소-재【마을】송현리
- 솔-골〔송곡〕【골】소나무가 많은 골짜기
- 솔-재【마을】송현리
- 송-곡(松谷)【골】솔골
- 송-현【마을】송현리
- 신-석이【산】힌석이
- 안-궁꼴〔내궁꼴〕【마을】힌석이 밑에 있는 마을
- 양지소-재【마을】양지쪽에 있는 마을
- 어두어니【마을】골이 깊어 어둡다 함
- 음지소-재【마을】음지쪽에 있는 마을
- 잣미기-고개【고개】안궁꼴에 있는 고개
- 장군-바우【바우】바위 밑에 굴이 있는데 전에 장군이 났다 함
- 점-말〔사기점〕【마을】전에 사기점이 있던 마을
- 정-골【골】점말 아래에 있는 골짜기. 사기를 구웠음
- 통골-메기【고개】천미리로 넘어가는 고개
- 학령(鶴嶺)【산】전에 이산에 학이 매년 찾아왔다 함
- 학령(鶴嶺)【고개】학령고개
- 학령-고개〔홍학령, 학령〕【고개】학령산에 있는 고개
- 학령-골【골】학령 밑에 있는 골짜기
- 홍학령【고개】학령 고개
칠전리(漆田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옻나무밭이 있으므로 칠전(漆田)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큰 골을 병합하여 칠전이라 하였다. 1954년 군정으로부터 행정권 이양과 동시에 행정구역 확정으로 인구의 감소로 현리에 병합되었다.
- 대-곡(大谷)【마을】큰골
- 칠-전(漆田)【마을】칠전리
- -골〔대곡〕【마을】칠전 동쪽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
천미리(天尾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서 천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큰골, 육터골, 횟골, 서역골, 감자골, 장재터, 선의터, 강선터, 웡골, 가마터, 고양골, 샛터, 물어구, 송정동 자진구비를 병합하여 천미리라 하였다. 1986년 12월 평화의 댐의 건설로 몇 가구 살던 주민들도 이주를 당하여 현재는 주민이 살고 있지 않으며 평화의 댐만이 남아 있다. 원래 마을 이름이 하늘아래 끝동네라 하였는데 이제는 남한에서 끝동네가 되고 있다.
- 가-덕【산】육덕골에 있는 산
- 개매-소【소】모양이 가마처럼 생긴 소. 새터건너편에 있었으나 현재는 묻혀버려 흔적이 없음
- 간-대(間垈)【마을】새터
- 감잣-골〔감저골〕【골】감자가 많이 나는 골짜기
- 감저-골(甘著谷)【마을】감자골
- 강신-대(降信垈)【마을】강신터
- 강신-터〔강선터, 강선대, 강신대〕【마을】옛날에는 음력7월 그믐날이면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쌀과 꿀의 값을 정하였다고 함
- 고사리-덕【산】육덕골의 하나
- 고양-골【골】선의골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 대-터【마을】큰골
- 재-덕〔덕재〕【산】육덕골의 하나
- 마가-대(馬哥垈)【마을】마개터
- 마개-터〔마가대〕【마을】처음 이 마을을 마씨가 개척하였다 함
- 문-바우【바위】글을 쓴 바우
- 물-어귀〔수어구〕【마을】파라호 어구에 있는 마을
- 버석-구치【골】지형이 버섯(보습)처럼 생겼다 함
- 새마나-덕【산】육덕골의 하나
- 새-터【마을】고양골 남쪽에 있는 마을
- 서성-골(西城谷)【골】세익골
- 서역-곡, 직연-폭【골】세익골
- 세익-골〔서역곡, 서역골, 서성골〕【골】장재터 서쪽에 있는 마을
- 선의-대(仙儀垈)【마을】선의터
- 선의-터〔선의대〕【마을】장재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쇠스랑-골【골】쇠스랑처럼 생긴 골짜기
- 수-어구(水於口)【마을】물어귀
- 용-소【소】용이 났다는 소
- 우황곡(牛黃谷)【마을】웡골
- 웡골〔우황곡〕【마을】에익골 남쪽에 있는 마을
- 육대-곡(六垈谷)【마을】육덕골
- 육덕-곡【마을】육덕골
- 육덕-골〔육대곡, 육덕골, 육터골, 육적골〕【마을】고사리덕, 가덕, 사마나덕, 덕재등이 6개의 덕이 있었다 함
- 육적-골【마을】육덕골
- 육터-골【마을】육덕골
- 아진-구비〔자진동〕【마을】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자진동(自陳洞)【마을】자진구비
- 장수막골【골】큰골에 있는 골짜기
- 장재-대(長財垈)【마을】장재터
- 장재-터〔장재대〕【마을】횟골 남쪽에 있는 마을
- 철-미【마을】천미리
- 큰-골〔대터〕【마을】육덕골 북쪽에 있는 마을
- 큰-터【마을】천미리에서 가장 큰 마을
- 횟골【골】전에 회를 구웠던 골짜기
고방산리(古方山里)
본래 고려때 방산현(方山縣)이 있던 곳인데 그 후 방산현을 현리로 옮기었으므로 고방산(古方山)이라 하엿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공골, 궁골, 학령골, 방이골 청수등을 병합하여 고방산이라 하였으나 1962년 송현리에 병합되었다.
- 가는-골【골】가늘게 생긴 골짜기
- 곰의 덫-골【골】이곳에 곰의 굴이 있어 전에 덫을 놓았다 함
- 공-곡(空谷)【마을】공굴
- 공-굴〔공곡, 공굴〕【마을】새울 북쪽에 있는 마을
- 구지밭-골【골】구지비(굴제비)가 잘 깃드는 골짜기라 함
- 궁-골【마을】궁꼴
- 궁-꼴〔궁동, 궁골〕【마을】공굴 서쪽 산너머에 있는 마을.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 함
- 궁-동(弓洞)【마을】당꼴
- 당골〔당꼴, 당동〕【마을】서낭당이 있는 마을
- 당-동(堂洞)【마을】당꼴
- 두물-나드리【여울】두물이 합수되는 여울
- 뗏장-골【골】떼가 많은 골짜기
- 매봉-재【마을】고방산리에 있는 마을
- 방이-골【마을】방앗골
- 뱅잇-골〔방이동, 방이골〕【마을】학령골 밑에 있는 마을
- 사태-울【골】전에 사태가 났던 골짜기
- 살-애비【마을】전에 어느 부자가 마을 뒷산에 나무를 하러가서 아들은 위에서 나무를 자르고 아버지는 밑에서 나무를 하였는데 아들이 통나무를 밑으로 굴리면서 “나무굴러가요”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산림이 울창하여 그 소리가 메아리 쳐 오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여 아버지가 통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깔려 죽어 아들이 아비를 장사 지내고 매일 산에 올라와 소리 높여 울고 있으매 그 소리가 하도 처량하고 비통하여 후에 이 소리를 슬픈 노래로 만들어 마을에 애사가 있을 때는 불렀다함
- 새-울【골】응달말과 양달말 중간에 있는 골짜기
- 설통바웃-골【골】전에 벌통을 갖다 놓고 벌을 치던 골짜기라 함
- 성-빠리【골】절텃구미 위에 있는 골짜기
- 송직-골【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수리집-재【골】전에 독수리 집이 많은 골짜기
- 신배나무-골【골】신배나무(돌배나무)가 많은 골짜기
- 양짓-말【마을】양지쪽에 있는 마을 옛고을이 있던 마을
- 응달-말【마을】양짓말 반대쪽에 응달쪽에 있는 마을
- 절텃-구미【골】전에 절이 있던 골짜기
- 제당-응달【골】응달쪽에 있는 골짜기. 제당이 있음
- 질거너미-고개【고개】질러서 가는 길이 되는 고개
- 청숫-골〔청수동〕【마을】학령 북쪽에 있는 마을.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 마을
- 청수-동(凊水洞)【】학령 북쪽에 있는 마을(청숫골)
- 큰-서득골【골】큰서덜(너설)이 있는 골짜기
- 학-령(鶴嶺)【마을】학령골
- 학령-골〔학령〕【마을】학령 밑에 있는 마을
- 학령-로(鶴嶺路)【길】1951년에 군작전상 개설한 길이였으나 지금은 방산으로 가는 주도로가 되었음
- 향-재【산】옛날에 향교가 있던 산
- 호랑바웃-골【골】옛날 호랑이 굴이 있었다 함
- 횟-골【골】전에 회를 굽던 골짜기
건솔리(乾率里)
본래 양구군 방산면 지역으로 건배 또는 건소촌(乾所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골, 딴면, 배나무정, 사당골을 병합하여 건솔리라 하였으나 6.25사변으로 민통선 지역이 되어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1937년) 방산면의 리에서 제외되어 있다.
- 간-건배(間乾培)【마을】샛건배
- 건배(乾培)【마을】건솔리
- 건소촌(乾所村)【마을】건솔리
- 난선-걸【골】안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내-건배(內乾培)【마을】안건배
- 내-곡(內谷)【마을】안골
- 두타사(頭陀寺)【절】드레소 뒤에 있는 절
- 두타소(頭陀沼)【절】드레소
- 드레-소〔두타소, 두타연〕【소】샛건배 동쪽에 있는 소(폭포), 물이 깊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움
- 물양앗-골【골】전에 물레방아가 있던 골짜기
- 방세근 효자비(方世根 孝子碑)【비】방세근이 그 어머니가 겨울철에 잉어가 먹고 싶다는 소리를 듣고 드레소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드렸다 함
- 배나무-정〔이목정〕【마을】샛건배 남쪽에 있는 마을. 배나무 정자가 있었다 함
- 사당-곡(士堂谷)【마을】사당이 있던 마을(사당꼴)
- 사당-꼴〔사당곡〕【마을】웃건배 남쪽에 있는 마을 사당
- 산막(山幕)【골】예전에 산막이 있던 골짜기
- 산폿-드루【들】전에 삼포(蔘圃)가 있던 들
- 상-건배(上乾培)【마을】웃건배
- 샛-건배〔간건배〕【마을】웃건배 동남쪽에 있던 마을
- 안-건배〔내건배〕【마을】건배 북쪽에 있는 마을
- 안-골〔내곡〕【마을】웃건배 북쪽안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웃-건배〔상건배〕【마을】건배 위쪽에 있는 마을
- 이목-정(梨目亭)【마을】배나무정
- 잉개집-골【골】웃건배에 있는 골짜기
- 직-골【골】황개골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
- 황개-골【골】웃건배에 있는 골짜기
- 횟-골【골】회가 난다는 골짜기
- 회-서기【바위】빛깔이 흰 바위
수입면(水入面)
회양속현 재동사십리 본통구현지할속우본부야(在東四十里 本通構縣地割屬于本府也)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철원진관 소속 회양부 1759) 5세기 본도의 전역이 고구려의 판도내에 있을때 문등현이라고 하였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죽척파(竹尺波) 또는 문견현(文見縣)으로 개칭하기도 하였다.(이 시대를 고대문명의 발아기라 일컫는다.) 당시 수입면은 통구현의 속령으로 회양도호부에 속해 있다가 1424년 문등현이 수입면에 통합되는등 개칭이 빈번하다 현종 4년(1663) 양구현으로 환원했고 고종 32년(1895) 5월 지방관제 개혁으로 수입면은 양구군에 속해 18개리의 행정구역으로 1945년 광복과 더불어 38도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예속되어 미수복지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등리(文登里)
1759(영조 35년) 당시 수입면은 대정(大井)ㆍ인패(印佩)ㆍ점방(占方)ㆍ조천(鳥川)ㆍ송거(松巨)ㆍ소고개(所古介)ㆍ청송(靑松)ㆍ문등(文登)의 8개의 마을로 454家戶에 2134인(여 1028인)이 거주하였다. 문등리는 75가호에 381인(여176인)이 거주, 일제시대 2일, 7일 개시로 성황을 이루었다.
송거리(松巨里)
1759년 당시 21호에 118인(여 58인)이 거주하였다.
- 송거리유원지 : 송거리에 소나무와 잡목이 울창하여 이 고장의 유일한 유원지로 각광을 받아 온 곳
내리(內里)
지리적인 면에서 수입면의 마을중에서 막바지에 위치한다하여 이름하였다.
백현리(栢峴里)
고개에 잣나무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서 이름하였다.
- 상심포, 하심포 : 깊은 개울이 있었으며 그 위치에 따라 상심포(上深浦), 하심포(下深浦)로 불렀다.
근리(芹里)
미나리가 많이 분포한데 연유하여 이름하였다.
- 박달령 : 박달나무가 무성하여 이름한 령
- 구룡 : 구룡으로 산언덕에 마을이 자리하고 조상의 산소도 있었음
수청리(水靑里)
맑고 깨끗한 물이 개울을 지나가니 항시 푸르러 마을 이름을 수청이라 하였다.
- 어은산(魚隱山) : 높이 1,277m로 수입면내에서 제일가는 고산임
청송리(靑松里)
소나무가 많이 무성하여 연중 푸르다. 1759년 당시 수입면 8개 마을의 하나로 19호에 105인(여 53인)이 거주하였다.
두포리(杜浦里)
개울물이 내려오다 이 마을에 와서 막혀서 이름하였다.
석사리(石寺里)
옛날에 석사라는 암자가 있었으며 마을 이름을 寺명에 연유하여 지었다.
지혜리(智惠里)
지혜산이 존재하므로 마을 이름을 산명에 따라 이름하였다.
- 지혜산(智惠산) : 높이 1,024m의 명산
분지수리(分池水里)
회양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금강천이 두못을 이룬곳에 마을이 발달하였다.
- 막골 : 임시로 지은집이 골짜기에 많이 있었음
- 구미말 : 옛날 강아지풀(구미초)이 무성하였음
- 삼포말 : 인삼을 재배하는 삼장이 많았음
인패리(印佩里)
1759년 당시 95가호에 384인(여 185인)이 거주
- 후평(後坪) : 뒷들이라고도 부르며 논이 발달하였음
암리(岩里)
마을에 암석이 많이 분포한데서 지은 지명이다.
조천리(鳥川里)
마을 앞개울의 모양이 까마귀 주둥이 모양과 유사하다 하여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91가호에 380인(여 181인)이 거주하였다.
- 회골(檜谷) : 전나무가 골짜기에 많이 분포하고 있어 이름함
점방리(占方里)
수입면의 소재지로 사방을 훤히 내다볼 수 있어 날씨를 점칠 수 있다는데서 연유하여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49가호에 194인(여 95인)이 거주(일제때 3일, 8일 개시)
- 오리벌 : 들이 넓은데 비유하여 말함
지경리(地境里)
철원ㆍ회양군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 절골 : 옛날 절(암자)이 있었음
대정리(大井里)
큰우물(大井)이 많이 존재하므로 이름하였다. 1759년 당시 48가호에 291인(여 141인)이 거주하였다.
- 물다리 : 마을 주위의 개울에 다리를 많이 만들었음
천리(泉里)
샘이 지하로부터 솟아나므로 이름하였다.
양구읍(楊口邑)
본래 양구현(楊口縣)의 소재지이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하다가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양구현이 군으로 됨에 따라, 군내면(郡內面)이 되어 상리(上里), 중리(中里), 하리(下里), 함춘(含春), 동수(東水), 고대(高垈), 대동(大同), 한전(閑田), 죽곡(竹谷), 송청(松淸), 정림(井林)의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014년 군면 통ㆍ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안대(安垈), 이동(泥洞), 학조(鶴鳥), 공동(恭洞), 석현(石峴), 웅진(雄津), 용호(龍湖), 수인(水仁)의 8개리를 병합하여 다시 군내면이라 하여 19개리로 개편하고, 1017년 군의 이름을 따서 양구면으로 고침. 1945년 38도선이 생김에 따라, 공산치하에 들어갔다가, 1950년에 수복되고, 1962년 11월 21일에 북면(北面)의 공수(公須), 도사(都沙), 군량(軍糧), 월명(月明), 상무룡(上舞龍)의 5개리를 편입하여 현재 중리, 상리, 송청, 수인, 웅진, 석현, 학조, 안대, 한전, 공리, 이리, 정림, 죽곡, 하리, 고대, 동수, 월명, 도사, 공수, 군량, 상무룡의 21개리를 관할함. 동쪽은 동면과 남면, 남쪽은 춘천시 북산면, 서쪽은 화천군 간동면, 북쪽은 방산면에 닿음. 위도상으로는 북위 38도 07분,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도 12분에 자리잡고 있다.
상리(上里) - “윗마을”
본래 군내면(양구)의 지역으로 읍내 위쪽이 되므로 웃마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ㆍ폐합에 따라 중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리라 하였다.
- 곧은-골【마을】옷말 동쪽 곧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 곧을골-고개【고개】곧은골 뒤에 있는 고개
- 너르석-바우【바우】개울에 깔린 너럭바위
- 바웃-골【굴】바위 밑에 있는 굴
- 방애다릿-골【골】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 함
- 백봉-산(白峰山)【산】→흰봉
- 불당-고개【고개】불당골 뒤에 있는 고개
- 불당-골【골】옛날에 불당이 있었던 고개
- 소터-골【골】왕창골 안에 있는 골짜기
- 승직-골【골】중리(中里)의 일출봉(日出峰)과 맞닿은 골짜기
- 웃-말【마을】→상리
- 흰-봉〔백봉산〕【산】산 전체가 흰 차돌로 되었는데, 유엔군이 군용지를 다듬기 위하여 깎아 없앴음
중리(中里) - “중간마을”
군내면(양구) 지역으로 읍내중간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상리일부를 병합하였다.
- 석천-동(石泉洞)【마을】바위틈에서 샘물이 나오는 마을
- 액골-말〔액곳말〕【마을】중리 동쪽 산 밑에 있는 마을
- 액곳-말【마을】→액골말
- 일출-봉(日出峰)【산】중리 동쪽에 있는 산
- 향교-골【골】양구 향교(鄕校)가 있는 골짜기
하리(下里) - “아래마을”
군내면(양구) 지역으로 고을의 아래쪽에 위치하므로 아랫마을 또는 하리라 하였다.
- 광대-바우【바위】함춘리에 있는 바위. 지금은 대부분이 물에 잠겼음. 처음에는 바위가 산중턱에 있어 동수리(東水리)의 용의 머리와 마주 보고 있었는데, 용의 머리에 좋은 묘자리가 있어서, 그 묘를 쓴 사람이 해주목(海州牧)을 지냈다.
- 굴-바위【바위】밑에 굴이 뚫린 바위
- 넘은-골【마을】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
- 불당-골【골】전에 불당이 있던 골짜기
- 비석-거리【마을】전에 비석이 많이 서있던 곳이라 함
- 석-천(石泉)【약】돌 사이에서 솟아나는 약물
- 함-춘(含春)〔함춘리〕【마을】하리의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 이조때 함춘역(含春驛)이 있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함춘리가 되었다가, 1937년에 하리에 편입됨.
- 합춘-리(合春里)【마을】→함춘
송청리(松靑里)
본래 군내면(양구)의 지역으로 소나무가 많아서 송청이라 하는데 1914년 가창골을 병합하여 송청리라 하였다.
- 가창-골〔가창촌, 가창동, 군인말〕【마을】송청 북쪽에 있는 큰 마을, 군인 가족이 많이 삶
- 가창-동(佳倉洞)【마을】→가창골
- 가창-촌(佳倉村)【마을】→가창골
- 개시릿-보【보】선냇들에 있는 보
- 구인-말【마을】→가창골
- 문바웃-골【골】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골짜기
- 벙-재【산】옛날 무엉이가 많이 깃들던 산이라 함
- 선냇-들【들】→현내평
- 선냇-보【보】선냇들에 있는 보
- 속갯-벌【들】동리 앞에 있는 돌
- 송-청(松靑)【마을】→송청리
- 송청-교(松靑橋)【다리】송청리 앞에 있는 다리
- 현내-평〔선냇들〕【들】전에 현내면에 딸렸던 들
- 흰-석이【골】가창골 안에 있는 골짜기
수인리(水仁里)
- 소인-리(水仁里)〔수인, 쉰〕【리】본래 양구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이조대 수인역(水仁驛)이 있었으므로 수인, 줄이어 쉰이라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섭재골, 샛말을 병합하여 수인이라 하여 군내(양구)면에 편입됨
- 간곡-촌(間谷村)【마을】→샛말
- 느리-윅이【골】털속골 밑에 있는 골짜기
- 답박-골【골】수인에 있는 골짜기
- 민등-고개【고개】수인과 섭재 사이에 있는 고개
- 바른-골【골】바르고 곧게 생긴 골짜기
- 버드나뭇-골【골】바르고 곧게 생긴 골짜기
- 버정-골【골】엄장골 밑에 있는 골짜기
- 불땅-때기【골】바른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사슬-목【고개】승직골 옆에 있는 고개
- 새-골【골】담박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샛-말〔간곡촌〕【마을】수인과 섭재의 중간에 있는 마을
- 섭재-동(挾財洞)【마을】→섭잿골
- 섭잿-골〔협치골, 섭재동, 섭치동〕【마을】수인 서북쪽에 있는 마을. 골짜기가 좁다 함
- 섭치-동(挾峙洞)【마을】→섭잿골
- 수인(水仁)【마을】→수인리
- 쉰【마을】←수인리
- 승직-골【골】바른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
- 엄장-골【골】버정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여냇-골【골】춘천시와 닿아 있는 골짜기
- 옹장-골【골】섭잿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차돌-배기【골】차돌이 많은 골짜기
- 털속-골【골】차돌배기 옆에 있는 골짜기
- 협치-곡(挾峙谷)【마을】→섭재골
웅진리(雄津里)
수나루 수모루라고도 일컬어 오고 있는데 본래 서면의 지역으로서 소양강모퉁이(상류)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수나루라고 불렀다. 1914년 참나무정(眞木亭), 쇳골, 석장골을 병합하여 웅진리라하여 군내면(양구)에 편입하였다.
- 가르매-바우【바위】바위에 가리마가 져있다 함. 가물때에 적개심을 하면 비가 온다 함
- 가름박-골【골】가로 돌아져 있는 골짜기
- 다래기【골】다래나무가 많은 골짜기
- 물앙애-골【골】→방앳골
- 석이-바우〔외기바우〕【바위】석이가 나는 바위
- 석장(石張)【골】→석장골
- 석장-골(석장)【골】작은 수모루와 큰수모루 중간에 있는 골짜기. 골 전체가 넓직한 돌로 덮여 있음
- 소-웅진동(小雄津洞)【마을】→작은수모루
- 쇳-골〔철곡〕【골】전에 쇠가 났다는 골짜기
- 수-나루【마을】→웅진리
- 수-모루【마을】→웅진리
- 안장-배루【바위】안장처럼 생긴 바위
- 외기-바우【바위】→석이바우
- 우묵-디기【버덩】큰수모루 막바지에 있는 버덩
- 월북-현(越北峴)【고개】북쪽 월명리(月明里)로 넘어가는 고개
- 작은 수모루〔소웅진동〕【마을】수모루의 작은 마을
- 진목-정(眞木亭)【마을】→참나무정
- 참나무-정〔진목정〕【마을】작은수모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참나무 정자가 있음
- 철-곡(鐵谷)【골】→쇳골
석현리(石峴里) - “지푼개 또는 돌고개”
본래 서면의 지역으로서 돌고개 밑이 되므로 석현이라 하였는데 1914년 바깥 지푼개를 병합하여 석현리라하여 군내면(양구)에 편입되었다.
- 거믄-가니【버덩】바깥지픈개 남쪽에 있는 버덩
- 정박-골【골】바깥지픈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내머리-버덩【버덩】정박골 밑에 있는 버덩
- 돌-고개【마을】→석현리
- 돌-고개【고래】돌이 많은 고개
- 바깥 지픈개【마을】남면 심포리에 있는 마을. 안지픈개의 바깥쪽이 됨
- 바람부릿-골【골】바람이 세다고 함
- 석-현(石峴)【마을】→석현리
- 선-바우【바위】우뚝 서 있는 바위
- 선바웃-골【골】선바우가 있는 골짜기
- 시락-고개【고개】공리와의 경계에 있는 고개. 시락이란 장수가 이 곳에서 죽었다 함
- 큰-솔밭【버덩】소나무가 많은 버덩
공리(恭里) - “공 골”
옛날에 곰이 살았음으로 곰골의 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공골이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거렛말, 구렁말, 돌방울을 병합하여 공리라 하였다.
- 거렛-말【마을】길가에 있는 마을
- 건넨-버덩【버덩】마을 건너편에 있는 버덩
- 곰의-골【마을】→공리
- 공-골【마을】→공리
- 곽재-봉【산】석현리와의 경계에 있는 산
- 구렁-말【말】지금은 물 속에 잠겼음
- 구-현(鳩峴)【산】→비둑재
- 갓대-봉【산】전에 세부측량 때 측량표준기를 세웠던 곳이라 함
- 덫-고개【고개】등진리의 작은 수모루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곰의 덫을 놓았었다 함
- 돌방-울【마을】돌이 많은 마을
- 되링-괴치【골】돌방울에 있는 골짜기
- 된고무-내기【골】고무(거쿠:얼음이 층층이 쌓인 것)가 생기는 골짜기라 함
- 된도랑-보【보】학조리로 가는길 중간에 있는 보
- 문-바우【바위】모양이 문처럼 생긴 바위
- 문바웃-골【골】문바우가 있는 골짜기
- 범난-골【골】전에 범이 새끼를 낳았다는 골짜기
- 비둑-재〔구현〕【산】모양이 비둘기처럼 생기었다 함
- 사천-현(絲川峴)【고개】→시락고개
- 시락-고개〔사천현〕【고개】비둑재 동북쪽에 있는 고개
- 아랫-말【마을】공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웃-말【마을】공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지네-산【산】지네가 많은 산
- 지당-꼴【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진-등【산】등성이가 길게 된 산
- 청룡-재【산】공리 청룡(靑龍)쪽에 있는 산
- 호랭이-굴【굴】옛날 이 굴 속에서 호랑이가 살았다 함
학조리(鶴鳥里) - “한새골”
본래 양구현 당시 서면에 속하여 한새골 또는 한사동(寒沙洞)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병합으로 송정리, 오리개, 사태목, 윤의골을 병합하여 학조리라 칭하면서 군내면(양구)에 편입되었다.
- 가래-타니(갈탄리)【마을】예전에 가래나무가 많았다 함
- 가래타니 고개【고개】웅진리 작은 수모루로 가는 고개
- 가매-안【산】산형이 가마처럼 생겼다 함
- 갈탄-리【마을】→가래타니고개
- 굴-아우【바우】→지칠아우
- 굽-들【들】한새골 아래 굽어 돌아진 곳에 있는 돌
- 넙적-바우【바위】넙적하게 생긴 바위
- 덕-고개【고개】바른구렁 다음에 있는 고개
- 동치갯-보【보】사태목 아래에 있는 보
- 된-양지【산】경사가 된 산
- 딴-봉【산】외따로 떨어져 있는 산
- 떡돌-바우【바위】전에 떡을 치기에 좋았던 바위라 함
- 마근-대미【들】산이 앞을 막아 있는 들
- 마-산【산】오리개 뒤에 있는 산
- 마웃-버덩【들】옛날에 역(驛)에 딸렸던 들
- 매-봉【산】옛날 매 사냥을 하던 곳이라 함
- 못-구렁【골】못이 있는 골짜기
- 문-안【산】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산
- 바른-구렁【골】바르게 생긴 골짜기
- 배가-보【보】배씨(裴氏)가 만든 보
- 사타-뫼기【마을】→사태목
- 사태-목〔사타뫼기〕【마을】솔정지 동북쪽 개울가에 있는 마을
- 삼선-당(三仙堂)【골】전에 서낭나무가 있던 골짜기
- 삼-성【마을】솔정지 너머에 있는 마을
- 새-벌【버덩】새가 많은 버덩
- 솔-정지〔송정리, 송정〕【마을】소나무 정자가 있다 함
- 송-정(松亭)【마을】→솔정지
- 송정-리【마을】→솔정지
- 수턴-미【산】뫼가 숫하게 많은 산
- 숫돌-모루【들】솔정지 위에 있는 들
- 승직-골【골】한새골에 있는 골짜기
- 새-꼭지미【마을】삼성과 오리개 사이에 있는 마을
- 연못-보【보】배가 보 위에 있는 보
- 영감-바우【바위】나뭇꾼들이 잘 않아 쉬는 바위라 함
- 오류-포【마을】→오리개
- 오리-개〔오리포, 오류포〕【마을】솔정지 북쪽에 있는 마을
- 오리-포(五里浦)【마을】→오리개
- 윤의-동(尹儀洞)〔윤오골〕【골】한새골 동쪽에 있는 마을
- 작은 벌갯골【골】한새골에 있는 골짜기
- 쟁-꼴【골】좋은 샘이 있는 골짜기
- 지칠-아우〔굴아우〕【바위】굴이 있는 바위
- 쭉도리-바우【바위】모양이 죽도리처럼 생긴 바위
- 큰-벌갯골【골】한새골에 있는 골짜기
- 한사-동(寒沙洞)【마을】→학조리
- 한새-골【마을】→학조리
- 호통-골【골】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외진 곳에 있는 골짜기
이리(泥里) - “진구란”
본래 양구현 당시 서면 지역으로 이동(泥洞)이라 하는데 1914년 바깥마을을 병합하여 이리라 하여 군내면(양구)에 편입되었다.
- 괴숫-버덩【들】촛약물이 나는 버덩이라 함
- 바깥-말【마을】바깥쪽에 있는 마을
- 성-꼴【골】산제당이 있는 골짜기
- 진-구란【마을】→이리
- 청량이-고개〔청량현〕【고개】→월명리의 “청량이고개”
- 청량-현(凊凉峴)【고개】→청량이고개
안대리(安垈里) - “안터”
1759년 당시 현내면의 소재지로서 그 후 서면의 지역으로 안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등대를 병합하여 안대리라 하여 군내면(양구)에 편입 하였다.
- 가래-골【골】전에 가래나무가 많았다 함
- 갯-보【보】냇가에 있는 들에 딸린 보
- 동-대〔東垈〕【마을】→동두
- 동-두〔동대〕【마을】안터 동쪽에 있는 마을
- 동-리(東里)【마을】안터 동쪽에 있는 마을
- 벌통-골【골】벌통을 많이 놓은 골짜기
- 산지당-골【골】산재당이 있는 골짜기
- 석이-바우【바위】석이(石耳)가 나는 바위
- 수챗-보【보】수채가 있는 보
- 안-터【마을】→안대리
- 정림잇-골【골】정림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청량-고개【고개】청량골 뒤에 있는 고개
- 청량-골【골】이리와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 청량-사(淸凉寺)【절】청량골에 있는 절
- 팟박-골【골】청량골 안에 있는 골짜기
정림리(井林里) - “정죽림-정림”
본래 군내면(양구)의 지역으로서 좋은 약수와 대숲이 있으므로 정죽림(井竹林)이라 하였던 것이 줄어서 정림(井林)이 되었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정림리라 칭하였다.
- 개사리-평【들】송청리와의 경계에 있는 들
- 관암잿-고개〔관암현〕【고개】월명리와의 중간에 있는 고개
- 관암잿-골【골】관암잿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관암-현(款岩峴)【고개】→관암잿고개
- 작은 정림이【마을】정림의 작은 마을
- 절-터【터】전에 심곡사(深谷寺)가 있던 터
- 정-림(井林)【마을】→정림리
- 정림이-고개【고개】정림이 뒤에 있는 고개
- 정죽-림(井竹林)【마을】→정림리
동수리(東水里)
본래 군내면(양구) 서북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죽곡리 남쪽에는 하리 둥굴봉 북쪽에는 공수리와 고대리 서쪽에는 월명리를 접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넓고 기름진 농토가 많고 함춘벌에는 아름드리 수양버드나무와 대궐같은 기와집에 정자로 절경의 마을이였으나 화천댐 건설로 농토는 거의 수장되고 6.25동란으로 모두 파괴되어 지금은 다 메워진 연못만 남아있다. 옛부터 동수리를 동수동(東水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동수리라하고 1937년 용호리(龍湖里)를 병합하였다.
- 대-오현【고개】큰새고개
- 동숫-골【마을】동수리, 오목다리
- 새고갯-골【골】새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소-오현【고개】작은고개
- 오목-다리【마을】→동숫골
- 용의-머리【산】용의 머리처럼 냇가로 쑥 나와 있는 작은 산 이산에 묘를 써서 해주목사가 되었다 함. 현재는 파로호 옆에 위치하여 유명한 낚시터가 됨
- 용의머리-소【소】강물이 용의 머리를 돌아가기전에 소가 있으며 매우 깊고 물빛깔이 검푸러 이 소에서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하였다 함
- 용호동(龍湖洞)【마을】본래 양구군 서면지역으로서 용의머리 소가 있었으므로 용호 또는 용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용호리라 하였다가 1937년 화천댐(파로호) 때문에 대부분 물에 잠기고 나머지는 동수리에 편입되었음
- 작은-새고개【고개】공수리로 가는 고개, 큰 새고개 아래쪽을 말함
- 장군-바우【바위】옛날에 장수가 났다는 마을
- 큰-새고개【고개】월명리로 가는 큰고개
고대리(高垈里)
본래 군내면(양구)의 지역으로 높은 지대에 있으므로 고대(高垈)라 하였다.
- 간촌(間村)【마을】→샛말
- 고댓리【마을】고대리
- 돌미【무덤】돌을 쌓은 무덤. 그 옆에 괸돌이 있음
- 상-고대(上高垈)【마을】주랏말
- 상-촌(上村)【마을】주랏말
- 샛-말【마을】주랏말과 아랫말 사이에 있는 마을
- 서낭-고개【고대】서낭당에 있던 고개
- 수챗-골【골】샛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아랫-말【마을】고대리 맨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원텃-골【골】아랫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절-골【골】옛날에 절이 있던 골짜기
- 주-랏【마을】→주랏말
- 주랏-말〔상촌, 주랏, 상고대〕【마을】고대리 위쪽에 있는 마을
- 지석묘【무덤】둘레11.69m 넓이 13.8m 높이1.77m의 규모 선사시대 무덤으로 화강암이다.
죽곡리(竹谷里)
본래 군내면(양구)의 지역으로 죽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웃 치바래기, 아래 치바래기, 너믄말을 병합하여 죽곡리라 했다. 죽곡(竹谷)이라 함은 말 그대로 함춘벌에서 남면 가오작 고개쪽으로 보면 큰골이 마치 대무같이 곧게 뻗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가오작-고개〔남면고개〕【고개】상동면 가오작리로 가는 고개
- 갈-골【골】칡이 많은 골짜기
- 남면-고개【고개】가오작리 고개
- 내죽-곡(內竹谷)【마을】안죽골
- 넘은-말【마을】소바래기 건너편에 있는 마을
- 독골-들【들】소개기 앞에 있는 들
- 돔-골【마을】안죽골 동쪽에 있는 마을
- 상-우망【마을】→웃치 바래기
- 소-바래기〔우망, 우망리〕【마을】지형이 소를 바라다보는 것 같이 생겼다 함
- 쇳-골【골】안죽골에 있는 골짜기
- 아래 치바래기〔하우망〕【마을】소바래기 안쪽에 있는 마을
- 안-죽골〔내죽골〕【마을】안죽골 안쪽에 있는 마을, 죽곡리에서 제일 컸으나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하였음
- 우망(牛望)【마을】→소바래기
- 웃-치바래기〔상우망〕【마을】소바래기 위쪽에 있는 마을
- 작은 쇳골【골】전에 쇠가 있던 골짜기
- 작은 항개골【골】안안골에 있는 골짜기
- 죽-골【마을】→죽곡리
- 치매-바우【바위】치마주름처럼 생긴 바위
- 큰-쇳골【골】쇳골의 큰 골짜기
- 큰-항개골【골】안죽골에 있는 골짜기
- 하-우망【마을】아래치바래기
한전리(閑田里)
본래 군내면(양구) 지역으로 한밭들이라 하여 논보다 밭이 많고 골이 넓어 농사짓기가 편하여 옛부터 부자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한전리라 하였다.
- 갈-골【골】갈대가 많은 골짜기
- 상-한전리(上閑田里)【마을】→웃한밭들
- 소리-고개【고개】남면으로 가는 고개
- 쇳-골【골】동래 앞에 있는 골짜기
- 아래-한밭들〔하한전리〕【마을】한밭들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웃-한밭들〔상한전리〕【마을】한밭들 위쪽에 있는 마을
- 작은갈골【골】갈골의 작은 골짜기
- 한밭들【마을】→한전리
도사리(都沙里)
본래 북면의 지역으로 도새울 또는 도사동이라고 하였는데 북쪽으로는 방산면, 동쪽으로는 동면, 남쪽에는 한전리, 서쪽에는 고대리와 경계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큰말, 간성골, 학령골을 병합하여 도사리라 하고 1962년 11월 21일 양구면(읍)에 편입되었다.
- 가는-골【골】가늘고 좁은 골짜기
- 간성-골(干城)【마을】뒷산이 방패처럼 길고 타원형의 마을
- 군량골【골】군량리쪽으로 있는 산골짜기
- 더래잇-괘【고개】방산으로 가는 고개
- 더래잇-골【골】더래잇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 덕골-고개【고개】일명 장가 고개
- 도새-울【마을】도사리의 방언으로 현재 마을 중심
- 두둥-골【골】군량골 옆의 짧은 골짜기
- 장가-고개【고개】학령 동쪽에 있는 고개로 일명 덕골고개, 덕골로 넘어 가는 고개를 말함
- 큰-말【마을】도사리에서 가장크고 음뜸이 되는 마을
- 탑-고개【고개】동면 지석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전에 탑이 있었다 함
- 학령-골【골】방산으로 넘어가는 학령아래에 있는 골짜기
공수리(公須里)
본래 북면의 지역으로서 큰 은행나무(공손수)가 있었으므로 공숫골이라 하였는데 동쪽으로는 고대리와 파로호, 남쪽에는 동수리, 서쪽으로는 월명리, 북쪽에는 상무룡리와 군량리를 접하며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주막거리, 갬벌을 병합하여 공수리라 하고 1962년 11월 21일 양구면(읍)에 편입되었다.
- 갬벌〔진자평〕【들】전에 개암 나무가 있던 들
- 공숫골【마을】→공수리
- 귀밋-골【마을】공수리 서쪽에 있는 마을
- 대-오현【고개】큰 새고개
- 소-오현【고개】작은 새고개
- 수리-봉【산】작은 새고개 서쪽에 있는 산
- 작은-새고개【고개】→동수리의 “작은 새고개”
- 주막거리【마을】옛날에 주막이 있던 마을
- 진자평【들】갬벌
- 큰-새고개〔대오현〕【고개】→동수리의 “큰 새고개”
- 순직비【비】→6.25동란때 파로호 작전에서 순직한 오병철대위, 하영호, 박영오, 변태행 중사등 4인의 넋을 안치한 석비로 63년 5월 25일에 건립
군량리(軍糧里)
본래 북면 지역으로서 신라말 또는 춘천이 맥국일때(B.C109) 궁예(?~918)가 이곳을 정벌할 당시 군량미를 비축하고 창고가 있었으므로 군량골이라 하였는데 동쪽으로는 고대리 서쪽으로는 상무룡리 남쪽으로는 공수리 북쪽으로는 방산면을 경계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담, 안말, 덕거리, 용진터, 흑지돌골, 샛말, 본리, 선돌골, 검무정골을 병합하여 군량리라 하고 1937년 화천댐으로 인하여 본리를 병합하였으며 1962년에는 양구면(읍)에 편입되었다.
- 거무정-골【마을】샛말 서쪽에 있는 마을. 옛날 군사훈련할 때 검무를 하였다 함
- 고지개-고개【고개】방산면으로 가는 고개
- 곰네미【고개】동내에 있는 고개
- 군량-골【마을】→군량리
- 날근터-골【들】군량리와 담안말 중간에 있는 들
- 노고-성(老姑城)【산】옛날에 노파가 이산에 있는 돌로 절구공이를 갈았다 함. 또한 도관찰사였던 성세창(1481~1548)이 남긴「노고성」시한수가 전해오고 있다.
- 담안-말【마을】옛날에 성안에 있던 마을
- 덕-거리【마을】담안말 동쪽에 있는 마을
- 돌묵객-들【들】돌이 많은 들
- 둔전 밭-골【골】전에 둔전(屯田)이 있던 골짜기
- 마석-봉(磨石峰)【산】→숫돌봉이라 부르며 숫돌이 많이 산출되므로 붙인 이름
- 매봉-재【산】동내 앞에 있는 산
- 물-더랭이【골】약수가 있는 골짜기
- 밤나무-골【골】밤나무 많은 골짜기
- 번-니〔본리〕【마을】담안말 남쪽에 있는 마을. 본래 양구군 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본리(本里)로 되었다가 1937년 화천댐으로 수몰되어 군량리에 편입됨.
- 본니(本里)【마을】→번니
- 빚마흥-골【골】전에 어떤 사람이 빚을 졌는데 설통을 놓아 고기를 잡아서 빚을 갚았다는 골짜기
- 석장골【골】지장밭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선돌-골〔선둣골, 입석리〕【마을】선돌(立石)이 있는 마을
- 선둣-골【마을】→선돌골
- 성골-령【고개】거무정골 동북쪽에 있는 고개
- 성꼴【골】전에 성이 있었다 함
- 숫돌-고개【고개】숫돌봉이 있는 고개
- 숫돌-봉〔마석봉〕【산】숫돌이 나는 산
- 안골-들【들】안골에 있는 들
- 앞자릿-들【들】담안말 앞에 있는 들
- 어덩-굴【굴】번니 골짜기에 있는 굴
- 용진-터【마을】처음에 용씨가 터를 잡았다는 마을
- 이러시기-굴【굴】이러시기 산에 있는 굴
- 입석리(立石里)【마을】→선돌골
- 절텃-골【골】전에 절이 있었던 골짜기
- 지장 밭-골【골】물더랭이 옆에 있는 골짜기
- 호랭이-굴【굴】옛날에 이굴에서 호랑이가 살았던 굴
- 흑지록-골【마을】샛말 옆에 있는 마을
월명리(月明里)
본래 북면의 지역으로서 박달봉 밑이 되므로 박다리 또는 월명이라 하였는데 동쪽에는 양구읍과 동수리 서쪽에는 화천군 북쪽에는 상무룡리와 공수리를 접하고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구말, 도일, 당골, 안말, 샛골, 청량젓골을 병합하여 월명리라 하고 1962년에 양구면(읍)에 편입되었다.
- 가매소【소】가마처럼 생긴소
- 공수-령(公須齡)〔방아골고개〕【고개】공수리로 가는 고개
- 절암절-고개【고개】군소재지 양구읍으로 가는 고개
- 내촌(內村)【마을】→안말
- 당-곡(堂谷)【마을】→당골
- 당골【마을】서낭당이 있는 마을
- 동숫-골【골】동수리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
- 동숫골-고개【고개】동수리로 가는 고개
- 새월-고개【고개】새월 뒤에 있는 고개
- 샛골-고개【고개】→불당 고개
- 서낭-사리【골】전에 서낭당이 있던 골짜기
- 솔-버덩【들】전에 이들에 솔이 많았다 함
- 술래-목【산】사명산 밑에 있는 산
- 신뱃-골【골】전에 돌배 나무가 있었음
- 아랫신-덕【골】신덕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 아랫-조기골【골】안산 밑에 있는 골짜기
- 안-말〔내촌〕【마을】박다리 안쪽에 있는 마을
- 안-산(安山)【산】큰마을 앞에 있는 산
- 어구-리【마을】→어구말
- 어구-말〔어구리〕【마을】동리 어귀에 있는 마을
- 옻나무직-골【골】옻나무가 많은 골짜기
- 웃-신턱【골】신덕 위쪽에 있는 골짜기
- 월명봉(月明峯)【산】→신덕
- 작은당-골【골】작은 서낭당이 있던 골짜기
- 전다라니〔전월〕【마을】월명리에 딸린 마을
- 전월(全月)【마을】전다라니
- 좌수-바우【바위】전에 황엽이라는 좌수(座首)가 바위에서 놀았다 함
- 목-너메【골】월북현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 무랑-꼴【골】새월에 있는 골짜기
- 무쇠말-배기【산】전에 세부측량때 깃점으로 쓰던 무쇠말뚝이 있던 산
- 박-다리【마을】→월명리
- 박달-봉【산】→신덕
- 박가직-골【골】전에 방(方)가가 살던 골짜기
- 방아-골【골】공수령 밑에 있는 골짜기
- 방아-고개【고개】→공수령
- 방아다릿-골【골】새월에 있는 골짜기
- 보앙재-산【산】비석바우 밑에 있는 산
- 불당-고개〔샛골고개〕【고개】전에 불당이 있었다는 고개
- 비석-바우【바위】비문에 새긴 바위
- 사실 밤나무직-골【골】전에 사실나무가 있던 골짜기
- 새-월【마을】수리봉 옆에 있는 마을
- 청량이【마을】월명리 남쪽에 있는 마을
- 청량이-고개〔청량현〕【고개】청량이 마을에 있는 고개 월명리에서 이리로 넘어감
- 청량-현(凊凉峴)【고개】→청량이고개
- 큰당-꼴【골】큰 서당이 있던 골짜기
- 퉁가-터【마을】어구말 부근에 있는 마을
- 화-동(化洞)【마을】→도일
- 횟가루-골【골】전에 회를 굽던 골짜기라 함
상무룡리(上舞龍里)
본래 북면의 지역으로서 절구 위쪽이 되므로 웃절구라하고 동쪽에는 공수리 서쪽에는 화천군과 남쪽에는 월명리 북쪽에는 군량리와 방산을 경계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무룡리라하고 1937년 화천댐이 건설됨에 따라 하무룡리(下舞龍里)를 병합하여 1962년 11월 21일에 양구면(읍)으로 편입되었다.
- 검은-골【골】골이 길고 나무가 많아 컴컴한 골짜기
- 검은골-소【소】검은골에 있는 소. 지금은 없어졌음
- 고지기【골】방방골에 있는 골짜기
- 고지기-고개【고개】웃절구 가운데 있는 고개
- 높은텃-골【골】방산골에 있는 골짜기
- 밤성-골【마을】웃절구 동쪽에 있는 마을
- 밭-덕【마을】화천군 간동면 논덕과 맞닿은 마을
- 서-호【마을】아랫절구 서쪽에 있는 마을
- 성가맷-골【골】웃절구 서쪽에 있는 마을
- 성주-봉(城主峰)【산】청송애 동남쪽에 있는 산
- 성줏-골【골】성주봉 밑에 있는 골짜기
- 소리-고개【고개】웃절구 동쪽에 있는 고개
- 아랫-졸구〔하무룡리〕【마을】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하무룡리(下舞龍里)가 되었다가 1937년 화천댐의 건조로 상무룡리에 편입됨
- 예리섯-버덩【골】웃절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오리지렁-들【들】전에 오리나무가 많았던 들
- 옥-골【마을】웃절구 맞은편에 있는 마을
- 옹기점-말【마을】예전에 옹기점이 있던 마을
- 웃-절구【마을】→상무룡리
- 작은 횟골【마을】청송애 북쪽에 있는 마을
- 절-골【골】방산골에 있는 골짜기
- 절-구【마을】상무룡리와 하무룡리를 통털어 이르는 말
- 찬-새미【골】찬샘이 나는 골짜기
- 참-샘【우물】방산끝에 있는 샘
- 청송-애【마을】이곳 돌에 이끼가 끼여 퍼렇게 보인다 함
- 큰-횟골【마을】청송애 북쪽에 있는 마을
- 파소탕【소】지금은 파로호(破虜湖)에 묻힌 소
- 팥밭-골【골】팥밭이 많은 골짜기
- 하무룡리(下舞龍里)【마을】→아랫절구
- 할미-여울【여울】지금은 파로호에 묻혔음
해안면(亥安面)
해안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고치고 마을에는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었으며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하여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해”자를 쓰기 이전에 “바다해”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해안을 조사하면서 선사시대 유물과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 된 적이 있다. 이것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가 아니었나 생각 된다. 조개껍질은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조갤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가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이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면전체가 눈 밑에 있어 면전체가 한마을 같다고 했다.
현리(縣里)
원래 해안소가(亥安所) 있었던 곳으로 춘주(춘천)부에 딸려 있다가 조선시대 4대 세종 6년(1424년) 양구군으로 이속되어 현리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월(子月), 추덕이(楸德伊, 가래덕이), 상평(桑坪)을 병합하여 현리라 하고 해안면의 소재지가 되므로 해안이라 하였다. 1953년 휴전 전까지 격전지가 되었었으며 그때 미군들이 이곳의 지형이 주발처럼 생긴 분지라 하여 펀치 보올(Punch bowl)이라 하였다. 현재의 현1리와 2리는 6.25이후 새로 조성된 지역으로 입주민들의 관리를 위하여 집단촌을 조성함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해안면의 행정종합리가 되었다.
- 가래덕이〔추덕이〕【마을】상평 서쪽 둔덕에 있었던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6.25전쟁으로 폐동됨
- 동막동(東幕洞)【마을】현3리 지역으로 현 터가 있던 곳. 양지말과 응달말이 있었음
- 자월【마을】동막동 남쪽으로 지금의 농협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 상평【마을】동막동 뒤쪽의 들판에 있던 마을로 뽕나무를 많이 심어 붙여진 이름이며 오유리 사이에 한고개가 있음. 6.25전쟁으로 폐동됨
- 돌무루【길】현리 삼거리를 말함
- 방치굴【굴】와우산에 있는 굴
- 청명한【들】방치굴 너머에 있는 들
- 외술배기【마을】현재 중학교 앞에 있는 곳을 말하며 옛날에는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가 해안면의 중심지였다고 함. 외솔배기
- 진고개【고개】서화로 넘어가는 고개
- 지구말【마을】현1리의 동막동 가기 전에 있는 마을로 그네터가 있어 해안면민이 그네를 탔었다고 함
- 지둔지【마을】현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비석거리라고도 함
- 송죽마을【마을】현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 월산리【마을】현리 동쪽에 있는 마을
- 후리【마을】현리 동쪽에 있는 마을
- 수청골【골】가래덕이에서 흐르는 골짜기
- 바람골【골】상평 서쪽 골짜기
- 장명골【골】현3리 지당이 있는 골짜기
- 돌산밭골【골】팔각정 북쪽 골짜기
- 물골【골】해안 전체의 물이 이곳으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으며 서화, 가전리로 가는 골짜기
- 팔매둔지【능선】해안 초등학교 뒤에서 동막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예전에는 헬리콥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비행장이 있었는데 현재는 농경지 정리로 비행장은 없어지고 없음
- 노적봉【산】동막동 뒷산
- 뒤매기령【고개】추덕이에서 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 빨딱고개【고개】월산리를 넘는 고개에 아주 가파른 령을 말함
- 달산령【고개】빨딱고개 안으로 가서 금강산으로 가는 고개
- 방축골【굴】일제시대때 장마때면 범람이 잦아 축대를 세워 농경지를 보호하던 것이 지명유래가 됨
- 해안재건비【비】1956년 마을이 복구된 기념으로 세운 삼거리에 있는 돌비인데 “정의의 피로 물들인 펀치볼에 평화여 길이 깃드라”라고 새겨 있음
- 동막동 지당 : 팔매둔지에 있었는데 피나무 제당이라고도 불리웠음
오유리(五柳里)
오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오류동, 오릿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운천리를 병합하여 오유리라 하였다. 8.15해방후 북한에 있다가 1951년 수복 후 군용지로 쓰이다가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해안면 오유리가 되었다. 후에 중대가 생기면서 만대리의 운전동을 병합하여 오유 1, 2리도 분동하였다.
- 운천리 (雲川里)【마을】개울에 구름이 많이 끼여 붙여진 이름으로 큰오릿골에 위치하던 마을로 주막집이 많았다고 함
- 소오유동(小五柳洞)【마을】작은 오릿골에 위치한 마을
- 운전동(雲田洞)【마을】밭에 구름이 많이 끼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오유1리 길 아래 마을
- 중대(中隊)【마을】6.25전쟁 후 수색중대가 있었던 자리에 1962년 입주하면서 붙여진 이름
- 외솔백이【마을】현리에서 오유리로 넘어가는 길옆으로 현재 해안중학교 앞 도로변으로 1,000년 됨직한 큰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며 2005년 오유2리가 새농촌운동을 하면서 나무가 있던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외솔쉼터라고 불리우고 있음
- 큰오릿골【골】마을에서 제일 큰 골짜기
- 작은 오릿골【골】큰 오릿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웅장골【골】오유리 저수지밑 골짜기
- 한고개【고개】큰 고개라는 뜻으로 작은 오릿골에서 동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두물령【고개】두밀령이라고도 하며 작은 오릿골에서 동면 후앙골로 넘어가는 고개
- 운천봉【산】운천리에 있는 봉우리
- 소오류봉【산】작은 오릿골에 있는 봉우리
- 모두돌봉【산】작은 오릿골에서 동막동으로 가는 한고개에 있는 봉우리
- 덕장포(德場浦) : 덕장개라고도 불리우며 현재 오유1리와 오유2리 사이를 말함. 평창이씨 선산이 있음
- 오유저수지【저수지】큰오릿골 왼쪽에 중대 입주민을 위하여 뜰을 조성하고 저수지를 만든 것임
- 외미소【소】중대 앞 도솔천에 물이 돌던 곳의 소(沼)를 말하며 그 위에 물레방아간이 있었다고 전해짐
- 절터【터】현재 비행장 너머에 수십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절의 규모가 장엄하고 우아하여 금강산을 찾는 길손이나 승려의 수련장으로 쓰였던 곳이었으며 석가탄신일에는 많은 신도가 몰려와 그 곳에서 쌀을 씻으면 쌀 씻은 물이 큰 개울까지 뿌옇게 되었다고 한다.
만대리(萬垈里)
넓은 뜰에 만호(萬戶)가 충분히 살 수 있어 만대동(萬垈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독산촌(獨山村), 평촌(坪村), 내동(內洞), 운전동(雲田洞)을 병합하여 만대리라 하였다. 후에 운전동은 오유리로 병합되었다. 1951년 국군이 탈환하여 군용지로 쓰였다가 1956년 민간인이 살게 되었다.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 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가 되었다.
- 독산촌【마을】평촌 남쪽 도롱봉 위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던 마을로 현재 저수지 공사장 위 벌판을 말함
- 평촌【마을】만대리 남쪽 들 옆에 있는 마을로 들이 넓어 붙여진 이름
- 내동【마을】만대리 동쪽 산골짜기 안에 있었던 마을로 양지말, 음지말이 있었음
- 새마을【마을】오유리 북쪽 마을로 옛날 만대장터가 섰으며 6.25전쟁후 새로 조성된 마을. 새터메기라고도 불리움
- 만대장【마을】해안면 장이 섰던 곳으로 1일, 6일 장이 섰었는데 6.25전쟁으로 폐장되었다.
- 차두와치【마을】구시장 뒤쪽 잣나무 조림지 밑에 있던 마을
- 차주아치【마을】옛날 장이 서던 곳(구장터)
- 덕만이 마을【마을】만대리 1,200번지에 있던 마을
- 상촌모두미【마을】심메마니(산삼캐는 사람)이 살던 곳
- 둔전골【골】만대리 동쪽에 있던 골짜기
- 억세밭골【골】
- 어두원이【골】어두운 골짜기
- 무개골【골】낭대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대암산 큰골짜기, 큰골, 대암골로 불리움. 대암산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로 예부터 해안면 주민이 이곳에서 소를 잡아서 일년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는데 지금도 이어져 가고 있음
- 탑골【골】해안 터널공사장 골짜기
- 심소곡【골】대암약수터 골짜기
- 피나무둔지【골】돌산령 오른쪽 골짜기로 방씨네 주막이 있었다고 함
- 등정골【골】만대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내동골【골】등정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산재골【골】만대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씨앗(랏)골【골】대암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호랑박골【골】호랑이가 새끼를 쳤던 골짜기라 하여 지어진 이름
- 낭대골【골】무개골 옆에 있는 골짜기
- 피아무둥이【골】도솔산밑에 있는 골짜기
- 독산천(獨山川)【내】독산촌가에 있는 개울로 현재 해안면 지당과 취수장이 있는 개울을 말함. 현재는 도롱봉에 저수지 공사를 실시중이며 2007년 완공될 예정.
- 봉우재【고개】내동 동쪽 907고지로 비상도로가 있는 위의 봉우리이며, 옛날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 함
- 먼멧재【고개】만대리 구시장에서 후덕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멧돼지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 배남메기【고개】심정으로 올라 가는 고개
- 돌산령【고개】동면 넘어가는 고개로 도솔산 우측으로 길이 있고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
- 도롱봉【산】독산촌 아래 모습이 도롱룡을 닮아 붙여졌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동그랗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 구시장봉【산】만대리 북쪽 현리와 접한 구시장터에 있는 봉우리
- 운수봉【산】해안면과 인제군의 경계에 있는 동쪽 봉우리로 봉우리에 구름이 드리우면 비가 온다하여 붙여진 이름
- 만대냉천【샘】1919년 식수문제로 간이 상수도로 이용하였으며 수질이 매우 좋음
- 배바우【바위】도롱봉 앞에 있는 바우
- 펀치볼【지명】이곳의 지형이 주발, 대야 또는 주먹처럼 생겼다 하여 한국전쟁당시 유엔군에 의해 펀치볼(화채그릇)과 비슷하다고 하여 해안분지에 붙여진 이름
- 켄사스선(kansas line)【지명】1951년 9월 17일~10월 22일 만대리 지구 전투에서 제5사단이 싸울 때 군작전상 설정한 구역
- 헤리스선【지명】만대리 전투에서 1951년 9월 17일 제5사단 36연대 제1대대 9중대가 제일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붙여진 구역
- 피의 능선【지명】양구 동북방 해안 남방 “피의 능선 전투”가 1951년 10월 22일~10월 30일 기간중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만대와 가칠봉의 작전상의 구역
후리(後里)
현리 뒤쪽에 있어 뒷골 또는 후동(後洞)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석우촌(石隅村), 산뒷골을 합하여 후리라고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 석우촌【마을】돌모루라고도 하며 후동 남쪽, 즉 지금의 주유소 삼거리가 됨
- 청룡안(靑龍岸)【능선】전망대에서 돌모루까지 이어진 능선을 말하는데 동막동을 기준으로 좌청룡이 되므로 불려진 이름
- 산후동(山後洞)【마을】지금의 방축골을 말함
- 석갓뒤 : 현재 와우산 뒤를 일컬음
- 와우산(臥牛山)【산】소가 누워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
- 후동에는 옥녀산발(玉女散髮)형의 방씨시조묘가 있음
월산리(月山里)
달산령 밑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달산 또는 월산리라 불리운다.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성황당, 물골을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 물골【마을】수동(水洞), 물동이라고도 하며 성황당 동쪽에 있는 마을. 남북 두 산골물이 합해지는 곳으로 북쪽골을 양지물골, 남쪽개울을 응달말골로 불리웠음
- 성황뜰 (聖徨뜰)【마을】후리 농경지 가운데에 큰 서낭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현재 통일관과 휴게소가 있는 곳 ☞ 후리로 이동
- 제재골【마을】양지말골 안에 6.25전쟁 후 제재소가 있어 불리워졌음
- 월산령(月山嶺)【고개】달산령이라고도 불리며 인제군 서화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특히 이곳은 여름과 겨울 기온차가 심하여 여름은 41도에서 41.5도이고 겨울은 영하 30도에서 35도가 되는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음
이현리(泥峴里)
진고개 밑이 되므로 진고개 또는 이현동(泥峴洞)으로 불리고 진고개는 비가 오면 길이 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전(山前), 석둔지(石屯地), 화소허, 수뢰골을 합하여 이현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 산전【마을】진고개 남쪽 산 앞에 있던 마을로 앞에 가칠봉이 높이 솟아있음.
- 석둔지【마을】진고개 동쪽 와우산 앞의 둔지에 있던 마을
- 화소허【마을】진고개 동쪽 산의 반반한 터를 말하며 불탄터가 있어 붙여진 동네 이름. 지금의 을지전망대 앞이며 6.25전쟁후 폐동되었음
- 수뢰골〔수레골〕【마을】산사태가 생겨 돌과 흙이 쓸려 내려온 골짜기란 뜻으로 쓰레골이라고도 불리우며 방씨가 농사를 많이 경작했고 방씨탑도 있음. 점간마을에 대장간이 있었다고 함
- 송정말【마을】작은 가칠봉 남쪽에 소나무 9그루가 일렬로 있어 붙여진 이름
- 서희령(西希嶺)【고개】서화면 서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진고개를 말함. 지금의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사이에 있음
- 절골【골】사곡, 절터골이라고도 하며 가칠봉과 진고개 사이로 흐르는 골짜기로 절터가 있었다 함
- 수레골【골】작은 가칠봉과 큰가칠봉 사이에서 남쪽으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골짜기
- 미약골【골】수레골 남쪽 골짜기
- 제재소골【골】전망대 밑 골짜기
- 이새골【골】전망대 밑 큰 골짜기
- 쓰레바위【바위】가칠봉 밑 바위너덜
- 가칠봉【산】해안의 주봉이며 높이는 1,242m며 그 앞에 작은 가칠봉이 있음. 큰가칠봉과 작은 가칠봉사이를 장구맥이라고 하고 작은 가칠봉 앞은 지뢰밭으로 주의를 요함.
